산청 지곡사지

산청 지곡사지

[ 山淸 智谷寺址 ]

요약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리에 있는 절터. 2000년 8월 31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산청 지곡사지

산청 지곡사지

지정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일 2000년 8월 31일
관리단체 산청군
소재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내리 772-4번지 외 일원
시대 통일신라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크기 면적 3,300㎡

2000년 8월 31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지곡사는 통일신라시대 승려 응진(應眞)이 지리산 웅석봉(熊石峯:1,099m) 산자락에 처음 건립하여 국태사(國泰寺)라고 하였고, 고려 초에 혜월(慧月)과 진관(眞觀:912∼964)이 크게 중창하여 당시 선종(禪宗) 5대 산문(山門)의 하나에 속하는 큰 절이었다고 전해진다.

과거 산음현(山陰縣)의 대표적인 사찰이었던 지곡사는 전성기에는 소속 암자도 많았고 승려 수가 300여 명, 물방아만 해도 12개나 있었다고 한다. 절 입구에 홍예다리가 있었는데, 오색 무지개가 공중에 걸린 듯한 이 다리를 건너면 세사의 번뇌를 씻을 수 있다는 뜻으로 세진교(洗塵橋)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의 승려 홍유(泓宥:1718∼1774)가 쓴 《유산음현지곡사기(遊山陰縣智谷寺記)》에 따르면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약사전·천왕문·금강문·요사 등의 당우가 당당하게 늘어서 있던 영남의 으뜸가는 사찰이었다고 한다.

현재 절터 위쪽 300m 지점에 1836년(헌종 2)에 세운 홍유의 비석과 1845년에 세운 한암대사(寒巖大師)의 비석, 그리고 석종형(石鐘形) 부도(浮屠)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에 세운 진관선사(眞觀禪師)의 비석은 귀부(龜趺)만 남아 있는데, 대각국사 의천이 편집한 《석원사림(釋苑詞林)》 권191 첫머리에 그 비문이 실려 있다.

이밖에 절터에는 세진교비(洗塵橋碑), 1936년에 유실된 ‘세진교’ 암각 3자(字), 우물, 연화무늬를 조각한 배례석(拜禮石) 조각, 장대석, 탑재(塔材), 수조(水槽), 귀부, 석탑 지대석 등의 유물이 남아 있어 옛 가람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조선 후기에 폐사되었고, 지금의 지곡사는 1958년에 중건한 사찰로, 예전의 지곡사 가람배치와는 관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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