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방촌 영정

황방촌 영정

[ 黃방村 影幀 ]

요약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화산서원에 있는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영정. 1987년 4월 28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정종목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87년 4월 28일
관리단체 화산서원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백화리 905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크기 80×54cm

1987년 4월 28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황희(黃喜:1363~1452)의 나이 62세 때의 초상이다. 원래는 상주군 수봉리에 위치한 옥동서원(玉洞書院)에 봉안되어 있는 영정을 당시 상주의 황씨 종인(宗人)이 1844년(헌종 10)에 상체만 복제하여 나누어 받은 모사본이다. 화산서원 관리인이 보관해 오다가 1927년 화산서원에 보관하였다.

가로 54cm, 세로 80cm의 견본(絹本)에 진채(眞彩:빛이 진한 색채)로 그려졌으며, 원본 이상으로 그 표현이 뛰어나 한국표준영정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황희 영정의 모사본은 전남 나주의 노덕서원(老德書院)과 경기도 파주의 방촌영당에도 전해 오는데 그 중에서도 이 화산서원본이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황희는 자는 구부, 호는 방촌(W村), 본관은 장수로 1363년에 개경에서 출생하여 고려 우왕 때 성균관 학관이 되었다. 조선 세종 때 정승으로 24년을 지내면서 세종 30년의 태평성대를 주도하였다. 평소의 인자하고 청렴한 생활로 청백리의 표본으로 추앙받는다. 뒤에 홍여하(洪汝河:1620∼1674)가 지어 황희의 영정에 바친 (贊)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소 집에 있을 때는 그저 온화하여 어린 종들이 몰려들어 수염을 잡아당기며 안아달라고 하거나 먹을 것을 내라고 조르기를 마치 아이가 제 부모를 조르듯 해도 내버려두다가 궁복(宮服)차림에 (笏)을 꽂고 묘당(廟堂)에 나서면 여러 관료가 쩔쩔매고 조정이 숙연해지기를 마치 명문가의 자제가 그 부형(父兄)을 경외하듯 하였다. 비유하건대 신용(神龍)이 못 속에 숨고 수렁에 서려 있을 때에는 자라나 도마뱀 따위의 업신여김을 받다가도 한번 변화하면 비바람과 벼락을 일으켜 산곡(山谷)을 진동시키고 하해(河海)를 뒤집어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별로 두드러진 바가 없는 듯 하였으나 지금 300년이 지난 뒤에는 부녀와 어린애까지 그 유풍(遺風)을 그리워하며 그 성명을 외우고 있다. 이로써 본다면 그 위엄을 목격하며 그 의논을 듣고도 오히려 그 지닌 바를 다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이 한 폭의 영정을 보고 그 평생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상상해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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