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 신도비 및 남원 윤씨 절행 정판

유계 신도비 및 남원 윤씨 절행 정판

[ 兪溪 神道碑 및 南原 尹氏 節行 旌板 ]

요약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와초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신도비. 1990년 6월 30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유계 신도비 및 남원 윤씨 절행 정판

유계 신도비 및 남원 윤씨 절행 정판

지정종목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90년 6월 30일
관리단체 종중회대표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상중와길 74-88 (와초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1990년 6월 30일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 신도비는 유계(兪棨)가 죽은 지 94년만인 1757년(영조 33)에 건립되었다. 글은 1668년(현종 9)에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지었다.

좌대는 높이 39㎝, 두께 120㎝, 폭 166㎝이며, 비신은 높이 231.5㎝, 두께 45㎝, 폭 85㎝이다. 관석은 높이 50㎝, 두께 90㎝, 폭 120㎝이다.

유계의 자는 무중(武仲), 호는 시남(市南),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30년(인조 8)에 진사에 오르고 1633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였다. 1646년에는 무안현감을 지냈다. 그뒤 인조의 묘호 문제로 온성(穩城)에 유배되었다.

1652년(효종 3)에 풀려났고, 1658년 송시열의 천거로 문학(文學)에 등용되었다. 병조참지, 주사제조대사간 등을 지냈고, 이조참판에 이르렀다가 신병으로 사직하였다. 저서에 《시남집(市南集)》 《여사제강(麗史提綱)》 《가례원류(家禮源流)》 등이 있다.

참조항목

성당면, 유계,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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