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찬 묘 석상
[ 南宮璨 墓 石像 ]
- 요약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갈산리에 있는 석상. 1999년 11월 19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남궁찬 묘 석상
지정종목 |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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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9년 11월 19일 |
소재지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성당면 목사동길 48 (갈산리)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유물 / 일반조각 / 능묘조각 / 석인 |
크기 | 전체높이 250㎝ |
1999년 11월 19일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조선 성종 때의 관료 남궁찬의 묘 앞에 세운 화강암재로 만든 두 기의 석상이다.
남궁찬의 호는 호은(壺隱), 본관은 함열(咸悅)이다. 개국원종공신 계(啓)의 증손이며, 이조참판 순(順)의 아들이다. 성종 8년(1472) 생원시에 급제하고 성종 20년(1489) 대과에 급제하여 전라도와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부제학(副提學)에 올랐다. 중종 즉위 후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상소문을 올리고 비판하여 용안 호항(壺項)에 유배되었다. 후에 대제학과 이조판서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은거하다가 죽은 후 이곳에 묻혔다.
석상은 일반 묘석상처럼 묘 앞에 시위하듯 좌우로 벌려 서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두 석상이 같은 형식의 관복을 입고 있다. 모습도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 있으며, 광대뼈가 나온 긴 얼굴에 뚝 튀어나온 눈, 얼굴에 비해 작은 코 등 서로 비슷하다. 이런 형식은 여늬 문·무인석상과 다른 특이한 것으로서 국내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체적인 모습도 이국적이다. 다만 양손을 배 앞에서 소매 속에 감춘 모습만 일반 석상들과 같을 뿐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상은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장승이나 돌하르방 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크기는 좌측 석상이 전체높이 250㎝, 머리부분 높이 65㎝, 밑부분 폭 76㎝, 어깨 폭 81㎝이다. 우측 석상은 머리부분 높이만 70㎝로 좀더 크고 나머지는 같다. 건립 시기는 남궁찬 사후 묘의 설치 시기인 16세기 중반 조선 중종 때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