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 甲串나루 船着場 石築路 ]
- 요약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나루터.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
지정종목 | 인천광역시 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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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95년 3월 2일 |
소장 | 국토해양부 |
관리단체 | 인천광역시 강화군청 |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김포군 월곶리 성동리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교통통신 / 교통 / 수상교통 |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사이를 배편으로 연결하던 곳이다.
갑곶이라는 명칭에 대하여서는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23대왕 고종(高宗)이 몽고군의 침입을 받아 강화도로 몽진(蒙塵)할 때 이 나루를 건너게 되었는데, 이곳이 대안과의 거리도 짧고 수심이 얕아서 군사들이 갑옷을 벗어 쌓아놓고 건널 수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곳은 정묘호란(丁卯胡亂) 당시에도 인조대왕(仁祖大王)이 건넜던 사실이 있고,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에는 봉림대군(鳳林大君)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또 병인양요(丙寅洋擾) 때에는 격전을 치렀던 역사적 실전의 현장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나루터 시설 없이 이용되다가 조선 초기 박신(朴信)에 의하여 1419(조선 세종 원년)∼1432년(세종 14) 사이에 최초로 석축로가 축조되어 일제 때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었다. 그후 교통수단이 발달하자 1920년경에 성동리와 강화 선정리에 새로운 나루터가 신설되면서 옛 나루터는 폐쇄되었다. 해방 후에는 옛 나루터 부근에 선박으로 자동차를 싣고 다니는 나루터가 생겼다. 1969년 강화대교가 건설되자 폐쇄되었다.
1995년 3월 2일 인천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