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창영초등학교(구)교사

인천창영초등학교(구)교사

[ 仁川昌榮國校(舊)校舍 ]

요약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에 있는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초등학교 건물. 1992년 12월 16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천창영초등학교(구)교사

인천창영초등학교(구)교사

지정종목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92년 12월 16일
소장 인천광역시교육청
관리단체 인천광역시교육청
소재지 인천광역시 동구 우각로15번길 16 (창영동, 창영초등학교)
시대 대한제국기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근대교육문화 / 학교시설

1992년 12월 16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는 1907년에 인천공립 보통학교로 개교하였다. 인근에는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학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당시 그 주변에 고서점 거리와 어울려 인천 지역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일자형 단순 배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외형은 대칭 입면에 넓은 창과 평활한 면으로 직선을 강조했고 지붕에는 도머창(지붕 아래 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설치한 지붕창)이 설치되어 있다. 벽체 상단은 복공 화강암으로 아치형이며 현관은 홍예석(虹霓石)으로 만든 근세풍 양식으로 되어 있다. 교실 내벽에 나무 졸대심을 넣고 흙을 발랐으며 현관, 복도, 난간, 기둥 등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 당시 인천 만세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3·1만세 시위에 고무된 창영국교 3, 4학년생 김명진, 이만용, 박철준, 손창신 등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6일 학교 전화선을 끊고 동맹휴교를 선언하고, 정오 학교를 출발해 인천공립상업학교(지금의 인천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를 행진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투옥되었다.

창영초등학교에는 인천에서 최초로 일어난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3·1독립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참조항목

동구, 인천광역시

역참조항목

창영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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