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덕동

회덕동

[ Hoedeok-ri , 懷德洞 ]

요약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동.
위치 대전 대덕구
면적(㎢) 16.80㎢
문화재 회덕 동춘당(보물 209), 대덕 계족산성(사적 355), 회덕 동춘선생고택(대전유형문화재 3), 옥류각(대전유형문화재 7), 제월당 및 옥오제(대전유형문화재 9), 송용억 가옥(대전민속자료 2), 질현성(대전기념물 8), 우술성(대전기념물 9),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 및 비각(대전문화재자료 27), 회덕향교 대성전(대전문화재자료 5)
인구(명) 1만 9426명(2008)

면적 16.80㎢, 인구 1만 9426명(2008)이다. 북쪽에 삿갓봉(입봉:295.3m)이 솟아 있어 의 이현동·용호동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의 태악산(201.6m), 서당고개 너머로 (상서동·평촌동)에 인접해 있으며, 동쪽에 성재산(398.7m)의 연봉이 솟아 있어 의 (추동·주산동·효평동)과 접경을 이루고, 남쪽으로 직교형 시가지의 대로를 경계로 동구의 ·, 서남쪽으로 ·과 인접해 있으며, 서쪽에 갑천이 흘러 의 구즉동·전민동과 자연 경계를 이루는 대덕구의 중남부 지역이다.

회덕군(회덕현)의 내남면(비래·송촌·읍내)·현내면(연축·신대·와동)·일도면(장동)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에 회덕군이 폐지되고 신설된 대전군의 내남면과 북면[장동]의 지역이 되었다가 1935년에 대전군이 폐지되면서 신설된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에 대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면서 회덕현의 이름을 따서 행정동을 회덕동이라고 하고, 회덕1동·2동으로 분동하여 회덕1동에 읍내동(邑內洞)·연축동(連丑洞)·신대동(新垈洞)·와동(瓦洞)의 4개 법정동, 회덕2동에 송촌동·법동·중리동·비래동의 4개 법정동을 통합, 관할하다가 1989년에 대덕군이 폐지되면서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었다. 1990년에 중리동이 분리 독립되고, 1994년에 동구 가양동의 일부 지역을 비래동에, 유성구의 전민동·탑립동·봉산동의 일부 지역을 신대동에, 비래동의 일부 지역을 동구의 가양동에 각각 편입하고, 1995년에 읍내동의 일부 지역을 법동에, 비래동의 일부 지역을 송촌동에 각각 편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회덕1동은 법정동인 읍내동·연축동·신대동·와동·장동(長洞)으로 이루어졌고, 회덕2동은 법정동인 송촌동(宋村洞)·비래동(飛來洞)으로 이루어져 있다.

읍내동은 회덕군(회덕현) 내남면의 지역으로서 회덕현(懷德縣)의 소재지이므로 회덕읍내·읍내(邑內)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후곡리(後谷里:뒷골)·금성리(金城里)·교동리(校洞里:향교말)·당하리(堂下里:당아래)를 병합하여 읍내리(邑內里)라고 하다가 1983년에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리를 동으로 고쳐 읍내동이라 하여 회덕1동에 통합되었다.

연축동은 연방죽(연꽃이 나 있는 방죽)이 있으므로 연방죽골이 변하여 연축골이라고 하였다. 풍수설에 부근에 연화부수(蓮花浮水) 명당이 있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부 지역을 신대리에 넘겨 주고 연축리(連丑里)라고 하였는데, 1983년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리를 동으로 고쳐 연축동이라 하여 회덕1동에 통합되었다.

신대동은 새로 터를 잡아 이룩한 마을이라고 하여 새터말·신대(新垈)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목동(木洞:나멀·나무골)·와동(瓦洞:오얏골·욋골)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신대리(新垈里)라고 하였는데, 1983년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면서 리를 동으로 고쳐 신대동이라고 하여 회덕1동에 통합되었다.

와동은 옛날 기와를 구워 만들었으므로 왯골·왓골·오얏골·와곡(瓦谷)·와동(瓦洞)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일부 지역을 신대리(신대동)에 넘겨주고, 목동(나멀)·평촌(坪村:들말)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와동리(瓦洞里)라고 하였는데, 1983년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면서 리(里)를 빼고 와동이라고 하여 회덕1동에 통합되었다.

장동은 계족산과 성재산 뒤 약 4㎞ 되는 긴 골짜기 안에 있으므로 진골·징골·긴골·장동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부 지역을 용호리에 넘겨주고, 상산리(上山里:유산리)를 병합하여 장동리(長洞里)라고 하였는데, 1983년에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면서 리(里)를 빼고 장동이라고 하여 회덕1동에 통합되었다.

송촌동은 배달산·백달산(계족산:423m) 아래가 되므로 백달촌·배달촌이라고 하다가 조선 초기에 부사정을 지낸 쌍청당(雙淸堂) 송유(宋愉)가 정착한 이후 대대로 송씨들이 살고 있으므로 송촌이라 부르다가, 번창하여 윗송촌(상송촌)·아랫송촌(하송촌)의 두 마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래리(比來里)·중리(中里)의 각 일부 지역과 병합하여 송촌리(宋村里)라고 하였는데, 아랫송촌은 중리동의 구역이 되고, 이곳을 윗송촌 또는 송촌의 원마을이므로 원송촌이라고도 한다. 1983년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리를 동으로 고쳐 송촌동이라 하고 회덕2동에 통합되었다.

비래동은 배달산(계족산) 동남쪽 기슭에 있는 비래암(比來庵)의 아래가 되므로 비래골·비래동·비래가 변하여 비럭골·비래리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부 지역을 송촌리에 넘겨주고 대양리(大陽里:댕이)·신촌(新村:새터)을 병합하여 비래리라고 하였다. 1983년에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리를 동으로 고쳐 비래동이라 하여 회덕2동에 통합되었으며, 현재는 와 대전인터체인지 진입로 사이의 평지에 직교형의 가로망을 갖춘 시가지가 되어 있다.

1970년대까지는 구릉지와 농경지가 많았으나 경부고속도로가 개설되면서 시가지가 확장되었다. 현재는 고속도로를 경계로 하여 산지 쪽인 북동부는 개발제한구역이 되고, 남서부는 개발되어 도시형 시가지와 아파트단지가 되어 있다.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이며, 번화가는 회덕역 앞 변과 송촌동·비래동 서남부 국도변에 집중되어 있다.

회덕파출소·한국수자원공사·상수도송촌정수사업소·수질검사소·회덕우체국· 장동우체국·비래동우편취급소·한국도로공사 충청지역본부·대한적십자혈액원· 장동보건진료소 등의 공공기관이 있으며, 철도의 회덕역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와 17번 국도가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의 회덕분기점과 대전인터체인지가 있다.

문화재인 회덕 동춘당(懷德同春堂:보물 209)은 옛 회덕현 지역인 송촌동의 윗송촌에 있는 서재로, 충청지방의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표본이 되는 건물이다. 조선 때 선비 송이창이 세웠는데, 1653년(효종 4)에 그 아들 병조판서 동춘(同春) (宋浚吉)이 그 동쪽인 지금 자리에 중건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서, 정면에 우암 이 쓴 동춘당(同春堂) 현판이 걸려 있다.

대덕 계족산성(大德鷄足山城:사적 355)은 장동과 송촌동·읍내동·법동에 걸쳐 있는 계족산(423m:비수리·백달산·배달산) 봉우리에서 북동쪽 긴 능선 위 봉우리(431m)에 있는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수평 길이 1,037m(옛 기록에는 길이 1,969척·높이 16척)이다. 성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며 동·서·남·북쪽에 사방 약 100m가 4∼6군데씩 남아 있고, 남문·동문·서문 터를 확인할 수 있으며, 북쪽 성벽 아래는 급경사이므로 북문은 내지 않은 것 같다. 건물 터는 북쪽에 2군데, 서쪽에 3군데, 동쪽에 1군데가 있다.

회덕 동춘선생고택(懷德同春先生古宅:대전유형문화재 3)은 송촌동 192번지에 있는 조선 효종 때 경연관·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 송준길이 거처하던 옛 한옥으로, 동춘당(보물 209) 좌측 대문 안에 일자형의 정면 6칸·측면 2칸의 사랑채, ㄷ자형의 통칸인 3칸의 안채가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춘당 뒤 솟을대문 안에는 우측으로 가묘(家廟), 좌측으로 별묘(別廟), 제기고(祭器庫)가 사괴석 담장 안에 있다.

옥류각(玉溜閣:대전유형문화재 7)은 비래동의 비래골 계족산의 동남쪽의 두 계곡 사이에 가로질러 세운 특이한 2층의 누각식 건물로서 출입도 측면으로 한다. 위쪽 비래약수터의 샘물이 옥같이 맑게 흘러내리므로 옥류수각이라고도 하는데, 동춘당 송준길이 우암 송시열, 시남(市南) (兪棨), 송애 , 창주 (金益熙) 등 당시 석학들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뒤에는 송촌의 은진송씨 문중에서 자제들을 강학하기 위하여 세웠다는 비래암이 있다.

제월당 및 옥오재(대전유형문화재 9)는 읍내동의 뒷골 74번지에 있다. 제월당은 조선 숙종 때 판서·지동녕부사를 지낸 제월당 (宋奎濂)의 서재이고, 옥오재는 제월당 송규렴의 아들인 (宋相琦)가 지은 건물이다.

송용억 가옥(宋容億家屋:대전민속자료 2)은 송촌동 198-4번지에 있는 옛 한옥이다.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宋炳夏)가 분가하면서 세웠다.

질현성(迭峴城:대전기념물 8)은 비래동 산 31-1번지의 비래동과 동구의 가양동에서 대청동의 추동으로 넘어가는 길치고개(질타고개, 질현) 북쪽 봉우리에 있는 테뫼식 석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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