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생관의 여러 형태

사생관의 여러 형태

만물은 무상하므로(諸行無常) 생명이 있는 자는 반드시 멸하고(生者必滅),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진다(會者定離)는 것이 시간의 근본적 성격이다. 이 시간의 성격이 철저하게 표현된 것이 바로 죽음이다. 죽음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는 인간의 절실한 소망으로부터 사생관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현실의 육체적 생명이 연속되기를 바라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다. 불로장수의 선약(仙藥)을 구하는 중국의 (神仙思想)이 대표적이다. 이집트의 미라 보존사상이나 의 최후의 심판의 날에 무덤에서 소생하여 영원한 육체적인 생명을 얻는다고 하는 종말사상에도 이러한 형태를 엿볼 수가 있다.

현대에도 호르몬제나 비타민제를 애용하고 있으므로 아직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 육체는 소멸되어도 영혼은 불멸하다고 믿는 형태도 동서고금에 널리 찾아볼 수 있다. 이 형태에서는 의 서방 극락정토나 ·그리스도교의 천국과 지옥 등의 타계관념(他界觀念)이 발달하고, 이에 따라 죽은 자의 심판사상이 전개된다. 이와는 달리 인간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다시 태어나는 재생이나 윤회(輪廻)의 사상도 있다. 영혼이 불멸이면 죽음은 영원한 삶에 대한 새로운 출발이며 후생(後生)을 위한 현세의 생활을 바쳐야 한다는 생활 태도도 생겨나 여러 가지 종교교리가 성립, 전개되었다. 육체나 영혼도 멸망되지만 그에 대신하는 불멸(不滅)한 것에 대해 헌신함으로써 자기를 불멸의 것으로 하려는 형태도 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과 같이 과학 ·예술, 더 나아가서는 자손 ·민족 ·인류의 행복과 평화와 같은 이상이나 사업에 심혈을 기울여서 그것이 불멸인 한 자기도 영원하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이 형태의 좋은 예이다. 현실의 삶에 충실하게 집중함으로써 생사를 초월한 경지를 터득하고 죽어가야 할 생명 속에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는 형태도 있다. 선(禪)의 깨달음의 경지나 신과 일체가 된 신비적 체험은 이러한 예이다.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윤기와 의욕에 찬 생활태도는 죽음의 위협을 받는 덧없는 인생을 그대로 사는 보람이 있는 강력한 삶으로 바꾼다.

예술의 오직 한길을 걸어가고, 피맺힌 수행(修行)과 연구의 노력을 쌓아가는 사람들은 자기는 물론 현실도 잊은 삼매경(三昧境)에 들어간 것이다. 즉, 삶의 집착을 포함한 현실은 있는 그대로이지만 일상생활의 새로운 의미부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 형태를 각 요소로 삼아 구성한다는 형태도 있다. 따라서, 사생관의 형태는 천차만별이지만 어느 경우나 시간성이 관련되고 있다는 데에 공통된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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