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역사

잉글랜드의 역사

배스 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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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는 지리적·인구적으로 그레이트브리튼섬, 즉 영국 전체의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다. ·웨일스에는 켈트계 인종이 거주하였으나 잉글랜드에는 5∼6세기에 앵글로색슨인이 켈트인을 쫓아내고 정주하였다. 그 후 노르만인이 정복하였으나 스코틀랜드인이나 웨일스인이 잉글랜드인을 앵글로노르만인으로 적대시하는 전통은 거기서 기인된다.

또한 잉글랜드는 1282년 웨일스의 주요부분을 지배하였고, 1536년에는 전(全)웨일스를 합병하였으며, 1707년에는 스코틀랜드와, 1801년에는 와 연합왕국을 형성하였으나, 정치적 통합의 주체는 사실상 잉글랜드에 있었다. 아일랜드는 다년간에 걸친 투쟁 끝에 얼스터 지방만 남기고 1921년 자유국을 선언하고 연합왕국에서 분리해서 자치령이 되었다. 1937년에는 완전독립을 이루고 1949년에는 공화제를 채택하여 영국연방에서도 이탈하였다.

언어도 앵글로색슨어와 노르만어로 구성된 잉글랜드어(영어)가 켈트어를 몰아내고 전연합왕국의 공용어·일상어가 되었으며 잉글랜드의 런던은 연합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종교적으로도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전통적으로 비국교도(非國敎徒)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잉글랜드에서는 헨리 8세의 종교개혁 이래 국왕을 교회의 수장(首長)으로 하는 국교회의 신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잉글랜드는 연합왕국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도 영국은 스페인·네덜란드·프랑스에 잇따라 제해권(制海權)을 다투고 18∼19세기에 세계제국(帝國)의 지위를 달성하였을 때에도 중심은 잉글랜드에 있었다. 16~18세기에 걸친 영국의 중상주의정책(重商主義政策)은 해외식민지를 원료공급원·제품수요지로서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다시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이르는 산업혁명은 잉글랜드를 전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고 연합왕국의 다른 부분이나 식민지뿐만 아니라 모든 외국에 대한 경제적 선진성에 의해서 전세계로부터 초과이윤(超過利潤)이 유입되어 발전을 이룩하였다.

1770년대에 잉글랜드의 총인구 중 농업인구는 40%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1830년대에는 26%가 되고 그 후에는 잉글랜드 특히 중부·북부의 공업지대는 아일랜드를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를 흡수해서 인구구성을 변화시켰다. 산업혁명을 추진한 것은 이들 노동력 외에 에너지원(源)으로서의 중부·북부 잉글랜드, 웨일스 남부의 대규모의 탄전개발과 각종 신기계 발명, 런던·브리스틀·리버풀을 비롯한 양항의 존재 등이었다. 그 중에서도 중부(미들랜드지방)와 북부(랭커셔·요크셔·더럼 등)의 공업지대가 경제입지론의 고전적인 예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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