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재배의 발달

과수재배의 발달

포도수확

포도수확

고대 이집트에 과수원이 존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한국에서의 역사는 짧다. 《세종실록》 등에 옛날부터 감·밤·대추·귤과 같은 과실에 대한 기사가 실렸음을 볼 때 오래 전부터 과수가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과수원은 지금과 같이 집약적으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자가소비용으로서 집 주위에 심어져 방임상태에서 채집하는 정도였다. 《》에는 1052년에 탐라에서 세공으로 바쳐오던 감귤의 양을 1백포로 늘린다는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감의 주산지로 남부의 각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에 귤나무재배를 장려한 기록이 있다.

현재 재배되는 사과·배·복숭아·포도·감귤 등 주요 과수들은 1906년 대한제국 정부가 지금의 뚝섬에 원예모범장(園藝模範場)을 설치하여 외국으로부터 개량된 품종을 도입하여 시험재배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과수재배를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민족항일기에는 한국인에 의한 과수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6·25전쟁으로 황폐하였다. 1960년대부터 기술개발과 교육, 재배장의 확대, 정부의 농가소득증대작물 지정 및 지원으로 재배면적이 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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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의 재배단지

사과나무의 재배단지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