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의 변천
로텐부르크 시청사의 나선계단
계단의 역사는 매우 오래 되어, 이미 BC 3000년경에 의 지구라트나 BC
2000년경의 개인주택 등에 계단을 사용하였다. 또 이집트에서는 계단의 양쪽에 벽을
쌓은 일종의 계단실이 중왕국(中王國)의 퓨론에 들어 있었다고 생각되며, 같은
무렵의 가옥 모형에는 안뜰의 측벽을 따라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도 있다.
에서는 BC 1500년경 독특한 중층건축(重層建築)으로 알려진 크레타섬의
궁전에, 실용적이면서도 기둥과 결부된 아름다운 계단이 나타났다. 로마 시대에는
주택의 계단에 주목할 만한 것이 나타났는데, 그 중에서도 로마시의 외항(外港)인
의 대집단주택에는 좁은 계단실에 들어 있는 급선회계단이 안뜰과 함께 각
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미 로마에서도 볼 수 있는 나선계단은 좁은 바닥
면적을 유효하게 살리는 형식이며, 이는 특히 중세의 교회당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리스의 사로니카에 있는 성(聖)데메트리오스 성당(5세기 말)의
계단통을 따라 올라간 나선계단 등은 그 초기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형식은
두꺼운 벽체를 갖춘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히 원통형 탑을 오르내리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후기 고딕양식의 등장과 더불어 실용본위의 나선계단에도 조형상의 배려를 하게
되어, 의 성(聖)마크루 교회의 경우와 같은 아름다운 나선계단이 나타나게
되었다(16세기 초). 이보다 앞서 15세기에는 이 시(市)의 대성당에 있는 ‘오르간의
계단’과 같은 훌륭한 직선계단도 만들어졌다. 16세기에 출현한 화려한
성관건축(城館建築)은 계단의 역할을 한층 더 중요하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브로아
성관에 있는 통칭 프랑수아 1세의 계단(1515∼24)은, 8개의 지주(支柱)로 둘러싸이고
아름다운 난간을 갖춘 나선계단인데, 그 절반은 외벽면 밖으로 노출되어 건물의
외관을 장식하고 있다. 의장(意匠)의 고안자(考案者)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설도
있는 이 유명한 계단은 샹보르성(城)의 기교적인 이중계단과 함께 성관건축에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도 계단의 역사에 아름다운 작품을 남겼다. 의 라우렌티아나
도서관의 계단(1523)이 바로 그것인데, 중앙 디딤판의 멋진 곡선과 좌우의 직선,
그리고 이것들을 구분하는 한 쌍의 난간으로 구성되는 뛰어난 구성미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과 제임스 1세 시대에 지방의 귀족
저택을 중심으로 극히 장식적인 목조계단실이 생겼다. 이른바 엘리자베스식
·자코비안식인데, 짧은 계단이 계단통을 직각으로 따라 올라가는 계단실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17세기의 유럽에서는 바로크 건축의 성격을 반영하는 전례 없이 웅장하고 화려한
계단이 출현하였다. 이탈리아에서는 바로크 건축의 거장인 베르니니가 1638년에
바르베리니 궁전의 타원형 나선계단을 만들었고, 1663∼66년에는 성(聖)베드로
대성당과 바티칸 궁전을 연결하는 화려한 계단인 ‘스칼라 레지아’를 만들어
바로크의 동적(動的)인 공간에 어울리는 작품을 낳았다. 루이 왕조 시대의 프랑스
궁전에는 고전주의와 바로크적 성격이 결합된 장려한 계단이 출현하였다. 베르사유
궁전의 ‘대사(大使)의 계단’(1670~81)은 없어졌지만, 망사르가 설계한 호화로운
대리석 계단으로, 르블롱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19세기의
대표작으로서는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 있는 가르니에가 만든 계단이 유명하며,
20세기 초의 뛰어난 계단으로는 그로피우스가 쾰른의 공작동맹전(工作同盟展)을
위하여 만든 철골과 유리의 계단실에 있는 나선계단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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