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의 역사

가죽의 역사

무두질 기술은 인류가 터득한 가장 오래 된 기술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에, 수렵을 해서 얻은 짐승의 가죽에 지방을 바르고 문질러서 연하게 하는 아주 소박한 기름무두질법을 배우고, 그 후 불을 이용하여 동굴 속에서 짐승의 가죽을 연기에 그을리는 이른바 연기무두질법을 생각해 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에, 잿물에 가죽을 담그면 털이 빠진다는 것을 알고, 그 가죽을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침출액(浸出液)으로 염색을 함으로써 식물성 타닌의 무두질 효과를 발견하게 되었고, 천연으로 산출되는 백반(白礬)의 강한 수렴성(收斂性)으로부터, 이것을 무두질에 이용할 것을 생각해 냈을 것이다.

신석기시대 말기의 오리엔트 각지에 취락국가가 성립된 무렵에는 수메르인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이집트인 사이에 이미 타닌무두질법 ·기름무두질법 ·백반무두질법 등이 알려져 있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 된 가죽제품은 고대 이집트 시대의 것으로, 그 분묘(墳墓)로부터 유피로 만든 의복 ·샌들 ·액체용기(液體容器) ·풀무 등이 발견되고 있다. 또 당시의 유성공장도 발굴되어, 무두질 도구나 유제로 쓰였던 아카시아의 과협(果莢)도 발견됨으로써 BC 4000~BC 3000년경에는 이집트에서 이미 본격적으로 타닌무두질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소아시아는 백반무두질의 발상지로서 BC 1800년경에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히타이트인(人)이 백반과 타닌에 의한 복합 무두질기술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기술은 이집트인에게도 전해졌고, 다시 그리스인으로부터 크레타섬 사람을 거쳐 남유럽에 전해졌다. 중국 대륙에서는 옛날부터 독특한 연기무두질법이 이루어졌고, 북아시아의 몽골 유목민족 사이에서는 동물의 뇌장(腦漿)이나 골수(骨髓)로써 무두질하는 독특한 방법이 알려져 있었다. 이 기술은 슬라브 민족을 통하여 북유럽 여러 나라에 전해졌고, 다시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에도 전해졌다. 이와 같이 하여 각지에 전승되어 온 무두질법은 그 후에 점점 진보해서, 중세에 이르러 유피의 생산이 증대하여 업자의 (guild)가 결성되고, 그 보호 아래 더욱 발전하여 무구(武具) ·의복 ·신발류 등과 그 밖의 각종 가구나 장신품 등에도 널리 유피가 이용되게 되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유피의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유제의 개발, 제혁기계(製革機械)의 개량, 크롬 무두질법의 발명 등이 잇따라 이루어져 근대적인 피혁공업으로 발전하였다. 크롬 무두질법은 1884년 A.슐츠가 발명한 것으로, 그 방법은 이욕법(二浴法)이라 하며, 중크롬산염 용액에 가죽을 담그고 이어서 환원욕(還元浴)으로 이행하는 방법이었다. 1893년 M.데니스가 일욕법(一浴法)을 고안하게 되자 급속히 발전하여, 오늘날의 무두질법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옛날부터 가죽은 의복 ·깔개 ·무구(武具) 따위로 사용되었고, · 등의 가죽은 조공품(朝貢品)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원래 중국으로부터 무두질법이 전해지고, 한국 사람으로서 일본에 귀화(歸化)한 사람이 일본에 무두질법을 전하기도 하였으나, 근세에 이르러 일본군대가 서구화함에 따라, 일본에서 서양식 유피제조업이 발달하게 되었고, 1930년경에는 서울 영등포에 군수용 피혁공장이 설립되어 한국의 피혁공업도 점차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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