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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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놀이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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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에 의해 촉발된 근대시민사회와 더불어 시작된 19세기는 회화의 발전이 극성을 이루던 시기였다. 로코코의 귀족적 취향으로부터 벗어나 고전주의의 엄격한 화풍을 복원한 J.L.다비드의 신고전주의가 혁명의 공식미술로 인정받다가 후에 나폴레옹 제정의 어용회화로 전락한 한편, 혁명이 성취한 자유의 이념을 회화에 실천하고자 했던 사조가 낭만주의이다.

들라크루아, 제리코와 같은 화가들은 J.L.다비드와 J.A.D.앵그르의 신고전주의에 나타나는 미의 이념을 개개인의 감정과 상상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로 바꿔놓았다. 낭만주의에 맞선 G.쿠르베는 현실의 진상(眞相)에 주목하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반영하고자 한 사실주의 회화를 정초하였다.

한편 에스파냐 이면서 낭만주의적 특징을 보여주는 F.J.de 고야와 시인이자 신비주의자였던 W.블레이크의 회화는 프랑스 낭만주의와 다른 맥락에서 주관적이며 풍부한 상상력에 기초한 세계를 드러내며, 독일의 C.D.프리드리히 또한 슈베르트의 가곡에서 특징적인 낭만적 서정성을 반영하는 그림을 그렸다. 한편 영국의 풍경화가 J.M.W.터너와 J.컨스터블의 그림은 인상주의 출현을 예감하게 한다.

19세기 후반 유럽회화를 지배했던 것은 인상주의로서 회화의 자율성의 획득이라는 과제가 인상주의에 의해 성취된다. 인상주의자들은 관전(官展)인 살롱에서 낙선한 작품들을 모아 ‘독립전’을 개최하고, 졸라 등의 문학가들과 카페 게르부아에 모여 부르주아 취향에 대한 분노와 새로운 미학에 대한 논쟁을 벌였으며, 외광(外光) 아래서 순간적 인상을 화면에 표현하고자 하였다. 《해돋이-인상》이란 작품으로 인상주의란 명칭을 유발시킨 C.모네의 그림은 빛과 색에 대한 지나친 강조로 형태가 와해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상주의 화가라고 해서 모두 동일한 양식과 경향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É. 마네역시 근본적으로 외광파이지만 보다 사실주의에 가까우며, E.드가는 무용수의 운동감을 포착하는 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인상주의들이 그들의 미적 이념 성취를 위해 자연대상에 주목한 것은 사실이지만, 찰나적인 인상의 표현을 위해 도시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이를테면 모네의 《생라자로역》과 P.A.르누아르의 도시민의 야유회, 점묘법을 통해 보다 과학적인 회화에 근접한 G.쇠라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시민들의 휴일 오후, H.de 툴루즈 로트레크의 물랭루즈와 보트놀이, 도시의 번화한 모습 등은 자연에서 포착할 수 없는 순간적 ·유동적인 아름다움을 도시에서 찾고자 한 그들의 태도를 반영한다.

인상주의는 또한 V.van 고흐, P.고갱, 그리고 P.세잔과 같은 후기인상주의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초기의 고뇌를 반영하고 있는 우울한 그림으로부터 남프랑스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빛나는 자연을 용솟음치는 터치로 표현한 고흐가 표현주의에, 타히티로 떠난 고갱의 상징주의가 상징주의에, 형태의 보다 견고한 구축을 위해 노력한 세잔은 입체주의 미술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이들은 19세기의 미술의 방향을 20세기를 향해 돌려놓았다.

또한 19세기 말의 세기말적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경향으로 상징주의를 들 수 있으며, A.뵈클린, D.G.로제티, O.르동, P.de 샤반느, G.모로는 내면의 신비와 신화적 몽환의 그림을 그려냄으로써 낭만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상력의 문제를 보다 집요하게 추구함은 물론 형상의 마술적 힘을 문학성과 결합시키고 있다. 한편 상징주의는 G.클림트와 비엔나 분리파나 E.뭉크의 작품 속에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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