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한국문학과 모더니티

1930년대 한국문학과 모더니티

 30년대의 한국의 문학은 20년대 후반에 성행했던 프로문학에 대한 반발과 파시즘의 대두 및 중 ·일전쟁 발발로 불안의식이 고조되어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객관적 정세가 악화될 때 문학은 위축되고 안이한 길을 걷게 되는 것이 상례이지만, 이 시기의 문학을 문학사적인 입장에서 살펴볼 때 반드시 그렇지는 않아 그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시나 소설에서 서정주의적인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이다. 시에서 김영랑(金永郞), 소설에서 이태준(李泰俊)의 작품들이 이 범주에 속하며 이효석(李孝石)의 후기 작품도 같은 경향이다. 거기에는 민족주의적인 애상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둘째는 33년을 전후해서 등장한 모더니스트의 일파이다. 이 은 시인들이 중심이 된 문학운동으로 서양의 상상파(이미지즘)의 계통을 본떠서 모더니티를 강조한 것이다. 김기림(金起林)이 주동이 되고 김광균(金光均) ·장만영(張萬榮) ·장서언(張瑞彦) 등의 시인들이 뒤를 따랐다. 9인회의 한 사람이었던 정지용(鄭芝溶) 또한 언어의 조탁(彫琢)과 리듬의 추구에 주력하면서 모더니즘의 선행주자의 역할을 했으며, 이 파를 이론적으로 도운 사람은 새클리 등의 주지파(主知派) 문학을 도입 소개한 평론가 최재서(崔載瑞)였다. 한편 이상(李箱)도 이와 같은 경향을 띠고 작품활동을 한 작가이다. 그는 초현실주의 시(詩) 《오감도(烏瞰圖)》(34)와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 《날개》(36)를 써서 현대시와 현대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

30년대 후반기에는 재능 있는 신인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는 일본의 대륙침략전이 한창이던 때였으므로 한국문학의 주경향은 도시의 현실을 도피하여 자연을 가까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고, 의 대거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김동명(金東鳴) ·김상용(金尙鎔)의 전원시(田園詩), 이무영(李無影)의 농민문학이 그것을 증명하며, 이광수가 《단종애사(端宗哀史)》를, 김동인이 《운현궁의 봄》을, 현진건(玄鎭健)이 《무영탑(無影塔)》을, 박종화(朴鍾和)가 《대춘부(待春賦)》 등 역사소설을 내놓은 것도 그들의 민족주의 사상과 무관하다 할 수는 없으나 앞에서 말한 현실도피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 무렵 심리주의와는 반대로 세태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일군의 세태소설이 등장했다. 채만식(蔡萬植)의 《탁류(濁流)》(38),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川邊風景)》(36)이 그것인데, 유진오(兪鎭午)도 《김강사와 T교수》(35)를 거쳐 시정(市井) 세계를 묘사한 《주붕(酒朋)》(40)을 발표하였다. 이 밖에 인상파 작가로 불리는 계용묵(桂鎔默) ·김유정(金裕貞)의 활약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의 후반기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현상은 유능한 신인들의 등장이라 하겠는데 시에서 서정주(徐廷柱), 소설에서 김동리(金東里) ·박영준(朴榮濬) ·정비석(鄭飛石) ·최인욱(崔仁旭) 등 신인이 한국의 토착적 ·풍토적인 데서 제재를 찾아 작품을 형상화함으로써 높은 예술성의 획득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특히 김동리는 《무녀도(巫女圖)》 《바위》 등의 수작들을 발표하여 한국의 문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4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전쟁 말기로서 한국문학은 암흑기에 처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에 두 개의 문학잡지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이 존재하여 문학을 지키는 교두보의 역할을 했다. 이 잡지를 통해서 박두진(朴斗鎭) ·박목월(朴木月) ·조지훈(趙芝薰) 등 청록파 시인과, 소설에 최태응(崔泰應) ·임옥인(林玉仁)이 등장하였다. 조지훈의 자연적 ·선적(禪的)인 고아한 율조, 박목월의 토속적 민요적 자연친화(自然親和), 박두진의 이상적인 자연승화 등은 특히 괄목할 업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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