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한국무용

백제의 한국무용

백제는 중국 남조악(南朝樂)인 청악계(淸樂系)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외에 뚜렷하게 전하는 문헌상의 자료가 적어 추정에 불과하나 남조 문화의 수용으로 섬세하고 온후한 춤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通典)》을 빌어 쓴 백제무용에 대한 기록을 참고해 보면 무용수 2인이 붉은 빛깔의 큰 소매의 치마 저고리에 장보관(章甫冠)을 쓰고 가죽신을 신는다는 의상에 관한 것만을 서술하여 그 춤의 형태는 짐작할 수 없다.

백제의 악무(樂舞)의 형태는 일본 악서인 《악가록(樂家錄)》에 백제 사람 미마지(味摩之)가 귀화하여 중국 오(吳)나라에서 배운 기악무(伎樂舞)를 일본에 전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교훈초》에 의하면 이 춤이 가면무이며 현재 일본에서는 기악가면만 230여 종이 전래 당시의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 놀이로서는 현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백제의 옛땅에서 유풍(遺風)한 마한의 제천행사가 오늘날의 은산별신굿과 도당굿으로 전승된 점을 미루어 볼 때 답무(踏舞)의 형태인 마한의 풍속을 백제가 그대로 전승하였을 가능성을 통해 백제의 춤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무용은 기악 이외에도 왕이나 귀족들에 의해 전문적인 무용수가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백제 악사는 4인으로 ‘횡적(橫笛) ·공후(箜篌) ·막목(莫目) ·무(舞)’ 등을 맡은 사람이라는 기록을 통해서 무용과 악사의 구분이 뚜렷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일본에 정기적으로 무악이 뛰어난 사람을 파견했음을 볼 때 백제무에 관한 남은 기록은 없으나 백제 사람들이 뛰어난 문화를 지닌 민족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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