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물기계의 역사

편물기계의 역사

수공이 아닌 기계적인 방법으로 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589년 영국인 W.리에 의한 목제 족답식 수동양말면기가 발명된 이후부터이다. 이 기계는 탄성침을 처음 사용했고 성형편성이 가능했던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는데, 이것이 당시에 성행했던 수편양말을 공업화시키는 효시가 되었으며, 오늘날 모든 편기의 시조가 된다. 1849년에는 역시 영국인 M.타운센드에 의하여 자동침이 고안되었고, 곧이어 1863년 미국인 I.W.램이 자동침을 사용한 횡편기를 발명하여 공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때부터 자동침은 편기의 고속화에 공헌하게 되어 자동침을 사용하는 각종 편기의 개량발명을 거듭함으로써, 오늘날 모든 편기에 사용하고 있는 바늘의 약 80%를 이 자동침이 차지하게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와 기계공업의 발달에 따른 고속편기의 출현, 1960년대에 비롯된 전자식 자동제어와 자카드 무늬장치가 실용화 단계에 있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다. 한국에 처음 편기가 설치된 때는 1910년 전후이다.

이것은 일본제 수동양말편기로서, 양말의 손뜨개질을 탈피하게 한 최초의 기계이다. 1907년 평양에 설립된 공신양말소(박치록 장로)가 이 기계 몇 대로 출발했는데, 후신인 삼공양말공장은 동양 굴지의 종합메리야스 공장으로 성장했다. 1910년대에는 평양과 서울에 수동양말편기와 역시 일본제 횡편기가 속속 도입되어, 양말·스웨터·장갑을 기계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어 1919년경 미국 선교사의 운영재단이었던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실업장(實業場)에서 미제 자동양말기 4대를 도입하여 양말제조의 자동화와 고급화를 이룩하기 시작했다. 1933년 평양의 조선메리야스공장에서 일본제 환편기 10대를 도입, 내의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트리코 편기 및 라셀 편기는 8·15광복 이후 1957년 각각 5대와 독일제 1대를 도입한 것이 처음이다.

이처럼 20세기 이후부터 각종 외국산 편기를 속속 도입한 이래, 8·15광복 직후 국산편기의 보급이 뒤따랐다. 1960년대 메리야스의 수출 붐이 일면서부터 편기 대수는 급증하였다. 한국에서 처음 편기의 국산화를 시도한 것은, 1935년경 삼공양말공장 병설 삼공철공소에서 수동양말편기·자동양말편기·수동횡편기를 제작하면서부터인데, 당시 그 보급은 미미한 정도에 그쳤다. 8·15광복 직후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환편기·횡편기·양말편기의 국산제작이 이루어져, 1970년대부터는 해외로 수출할 정도로 편기제작공업이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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