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의 탐험과 조사

태평양의 탐험과 조사

태평양의 역사는 16∼17세기의 탐험시대, 18세기 이후의 과학적 조사시대로 대별할 수 있다. 인류 최초의 세계 일주항해의 지휘자로 알려진 마젤란이 마젤란 해협에서 태평양을 북서쪽으로 올라가 섬[島]에 상륙했다가 다시 필리핀의 레이테만(灣)에 들어가 세부섬을 영유한 것이 1521년이었다. 이후 약 반세기를 지나 1577∼80년 영국의 항해가이자 함대사령관이었던 F.드레이크가 대서양을 건너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 를 공략하고 캘리포니아 중부에서 태평양을 횡단하여 하와이 제도 ·인도네시아를 조사한 후 인도양 ·을 거쳐 귀국하였다. 17세기에는 태평양 탐험이 더욱 증가하여 에스파냐의 트레스(1605∼07년 남태평양), 네덜란드의 타스만(1642∼43년 남태평양과 북태평양 서부)이 알려져 있다.

18세기에는 러시아의 베링(1725∼30, 33∼43), 프랑스의 부갱빌(1766∼69) 등에 의해서 세계 일주가 감행되었다. 이어서 영국의 해군장교이자 탐험가인 J.쿡은 3차례에 걸친 세계일주 해양대탐험과 각종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여 태평양을 중심으로 많은 지리적 발견을 하였다. 즉 제1차(1768∼71)에는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연안을 측량하고, 제2차(1772∼75)에는 누벨칼레도니 ·뉴조지아 ·솔로몬 등 여러 섬을 발견하였고, 제3차(1776∼79)에는 하와이 제도를 방문하고 거기서 베링 해협까지 이르는 태평양과 북아메리카 연안의 지도를 완성하였다. 그는 이 항해 중에 선원의 식사에 대한 연구로 과 열병 방지에 성공하여 장기 항해의 난점을 제거하고 항해를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한 점으로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쿡의 과학적 탐사 후에도 프랑스의 라 페루즈의 북태평양 탐사(1785~88) 등의 조사가 행해졌다. 그 후에도 과학적 조사는 더욱 많아져 영국 챌린저호(號)의 태평양 탐사, 독일 ·미국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탐사가 잇따랐으며, 마침내 해저전선도 부설되고, 해저의 심도조사 자료도 증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협력에 의한 조사체제가 정비되어, 1949년부터는 2차례에 걸쳐 북태평양 조사가 실시되고 또한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의 협력에 의한 쿠로시오 조사도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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