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의 탐험

19세기의 탐험

고도의 자본주의시대로 들어가 문명사회의 교통 ·통신 수단으로서의 기차 ·기선 ·전신기가 발명되고, 탐험도 이러한 과학 ·기술의 진보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아졌다. 대서양 횡단의 해저(海底) 케이블 부설에 수반한 해양 ·해저 조사의 필요성은 많은 해양 대탐험을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1872∼76년의 챌린저호(號)에 의한 해양탐험은, 탄생의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한편, 열강의 국력신장과 함께 탐험은 대륙 내부를 지향하게 되고,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수반하는 고고학적 조사, A.훔볼트의 남아메리카 학술탐험 등은 그의 선구가 되고, W.C.웬트워스의 오스트레일리아 탐험, D.리빙스턴의 아프리카 탐험, S.A.헤딘의 중앙아시아 탐험 등을 주요한 것으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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