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의 역사

출판의 역사

책의 최초의 재료가 된 것은 BC 3000년경부터 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파피루스인데, 줄기로 만든 펜에 검댕이나 숯을 물에 탄 잉크를 묻혀 문자를 썼다. 파리의 국립도서관에는 도덕론(道德論)을 적은 《프리스 파피루스》라는 것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BC 2200∼BC 2000년경의 파피루스책이다. 지체 높은 사람이 죽었을 때 관에 넣고, 또 장례에 참석한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었던 《사자(死者)의 서(書)》가 그 후 나타났는데, 대영박물관(大英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이것은 BC 1400년경의 것이라고 한다.

고대 에서는 BC 5세기의 에 이미 영리를 목적으로 한 출판자와 서점이 몇 군데 있었고, 고대 로마에서는 지금의 인쇄공에 해당하는 사자생(寫字生)의 동업조합이 BC 207년에 조직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로마의 출판자들은 책을 대규모로 수출하기도 하였다. 또, BC 220년에는 파피루스 대신 도 발명되었는데, 이것이 유럽에서는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책의 재료로서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BC 3세기 진(秦)나라 시대에 이미 나무·대나무 등에 붓과 먹으로 문자를 써서 책을 만들었으며, (始皇帝)가 (焚書坑儒)를 행한 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105년 후한(後漢) 시대에 채륜(蔡倫)이 종이를 발명하였는데, 7세기의 당(唐)나라 초기에 목판인쇄가 발명되자 책은 비로소 종이와 인쇄에 의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책은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본(筆寫本)이었고,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중국은 특히 송(宋)·원(元)나라 2대에 걸쳐 출판이 크게 번영하여 출판의 선진국이 되었다. 한국에는 중국과 가까운 관계로 종이와 목판인쇄 또는 책 자체가 일찍부터 소개되었는데, 어느 시기가 지난 다음 그것만으로는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스스로 목판인쇄술을 개발하게 되었다.

751년 이전의 목판인쇄물로 추정되는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1966년에 불국사 석가탑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현재 남아 있는 인쇄물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보는 이가 적지 않다. 고려 시대에는 목판인쇄술에 의하여 3차에 걸쳐 대장경이 개판되었다. 한편, 1227년(고종 14)부터 10년간에 걸쳐 《고금상정예문(古今詳定禮文)》 50권 28본(本)을 동활자로 인쇄하였다고 이상국 후집(李相國後集) 《신서상정예문(新序詳定禮文)》 발문에 기록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 시작의 시기를 1234년이라 하는 것은 이에 근거를 둔 것이다. 또, 1377년(우왕 3)에 금속활자로 간행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권2가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책의 역사’ 전시회에 전시되어, 이 책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을 전세계에 공인하게 하였다. 근세 조선의 인쇄술은 고려 인쇄술의 전통을 이어받아, 태종은 1403년(태종 3)에 남산 밑에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고 동활자 10만여 자를 주조하여 많은 활자본을 간행하였다. 이 계미자(癸未字)로 인쇄한 책을 계미자본이라고 한다.

그 후 조선 500년 동안 역대 왕들은 중요한 국가사업의 하나로 동활자 ·철활자 등을 20여 차례에 걸쳐 주조하고 주조한 해의 간지(干支)에 따라 활자 이름을 붙였는데, 세종은 특히 인쇄사업을 중시하여 인쇄 종사자들을 우대하였다. 근세 조선의 수많은 간행본은 크게 관판본(官版本) ·사판본(私版本)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판본은 다시 서원판(書院版) ·사찰판(寺刹版) ·사가판(私家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관판본 중에는 판면의 조화 ·문자체 ·지질 및 제책 등 도서미를 갖춘 화려한 것도 많다. 그러나 종래 한국에서는 책이 한 상품으로서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게 되어 있지 않았다. 관판본은 관비로 출판하여 관계관서나 관원들에게 무료로 배부하였고, 사찰판도 판비를 부담하는 시주(施主)가 따로 있어, 출판된 후 관계자들에게 적당히 나누어 주었으며, 사가판도 자손이나 문인(門人)들이 사비(私費)로 출판하여 관계인사들에게 배부하였기 때문에 서적이 유통과정에 있어 일반에게 널리 보급될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책을 필요로 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런 불편을 덜어주기 위하여 역대 왕조에서 몇 차례나 영리목적의 서사(書肆) 설치를 시도하였으나 그 제도가 정식으로 잘 실시되지 않았으며, 때로는 서사를 따로 두어 종이 ·무명 ·쌀 등으로 책값을 대납하게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7세기 중엽부터는 출판지나 출판자의 이름이 적혀 있는 매매 목적의 방각판(坊刻版)으로 볼 수 있는 판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요즈음의 출판사에 해당할 만한 상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초에는 출판지나 상호와 비슷한 이름이 밝혀져 있는 방각본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19세기 중엽에는 서울의 야동(冶洞) ·홍수동(紅樹洞) ·석교(石橋) ·무교(武橋) 등의 이름이 명시된 신간본과 또는 지방의 완산(完山) ·전주(全州) 등지에서 개판(開板)된 매매 목적의 방각본이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방각본은 주로 서울이나 지방의 서당에서 연소자들에게 널리 이용되는 《천자문(千字文)》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고문진보(古文眞寶)》 《사략(史略)》 《사요취선(史要聚選)》 《통감절요(通鑑節要)》 《소학집주(小學集註)》 《논어(論語)》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 등과 《규장전운(奎章全韻)》 《옥편(玉篇)》 《삼운통고(三韻通考)》, 관혼상제의 의식과 서간문 양식에 필요한 《유서필지(儒胥必知)》 《천기대요(天機大要)》 《사례편람(四禮便覽)》 《가례(家禮)》 《초휘(草彙)》 《서간(書簡)》 등과 간략한 의학서 및 《구운몽(九雲夢)》 《삼국지(三國志)》 《서유기(西遊記)》 《숙향전(淑香傳)》 《심청전(沈淸傳)》 《초한전(楚漢傳)》 등의 소설류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각본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만큼 값싸게 출판하기 위하여 인쇄나 지질이 매우 좋지 못하였다. 유럽에서는 14세기경에 제지법(製紙法)이 보급되고 동시에 목판인쇄도 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는 주로 수도원(修道院) 안에서 수도사가 필사본을 만들어 시판(市販)하는 것이 고작 출판이라고 할 만한 것이었다.

15세기 중반에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납활자[鉛活字]에 의한 활판인쇄술을 발명하게 되자 전유럽에서 출판이 성행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인쇄업자가 출판업자를 겸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출판업의 중심지는 독일의 여러 도시를 비롯하여 베네치아 ·파리 ·런던 등지였으며, 그들이 15세기 중반에 출판한 인쇄본은 <인큐내뷸라(incunabula)>, 즉 초기간행본이라고 하여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1476년에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안에 영국 최초의 인쇄소를 설치, 100종 이상의 미본(美本)을 출판한 W.캑스턴은 근대적 출판업자의 시조라고도 할 만하며, 그가 출판한 책은 ‘캑스턴판(Caxton版)’이라고 해서 애서가(愛書家)들 사이에 특히 소중히 여겨지고 있다. 그 후 유럽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출판업이 점차 근대화하여 성황을 이루게 되었으며, 18세기경부터는 출판사가 우선 인쇄업으로부터 분리되고, 마침내 판매도 서점에 맡겨 독립된 형태의 출판업자가 속속 출현하였다. 동시에 그 때까지 애매하였던 저작권(著作權)의 관념도 차차 확립되어, 1710년 영국은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이라고도 할 만한 ‘앤 여왕의 법령’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많은 해적판(海賊版)이 각지에서 발행되었기 때문에, 그 피해자였던 프랑스의 문인 A.뒤마, V.위고 등의 발기로 1878년 국제문예협회가 조직되어 이 성과가 86년에 체결된 최초의 국제저작권조약인 ‘베른 조약’으로 연결되었다. 한편,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대량판매와 지식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문고(文庫)가 일찍부터 간행되었는데, 독일의 《타우크니츠 문고》가 1841년에, 미국의 《에라스터스 비들 문고》가 60년에, 독일의 《레클람 문고》가 67년에, 한국의 《육전소설(六錢小說)》이 1913년에, 일본의 《이와나미[岩波] 문고》가 27년에, 영국의 《펭귄 문고》가 35년에, 한국의 《조선문고》가 38년에, 그리고 《박문문고》가 39년에, 프랑스의 《크세주 문고》가 41년에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서양의 출판업을 성대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이 되었던 활판인쇄술은 1883년 새로운 문물제도에 따르는 신문이나 서적을 출판하기 위하여 정부에서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하고 인쇄에 필요한 기계와 납활자를 수입하여 《한성순보(漢城旬報)》 등을 간행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한국에 도입되었으며, 84년에 광인사인쇄공소(廣印社印刷公所)를 설립하여 납활자로써 여러 종류의 서적을 간행하였다. 85년에는 배재학당(培材學堂)이 설립되고, 그 다음해에 학당에 인쇄부가 설치되어 많은 종교서적을 출판하였다. 납활자가 수입된 후 신문화의 계몽에 필요한 서적이 많이 출판되었는데, 《법규장정(法規章程)》 《전보장정(電報章程)》 《농정신편(農政新編)》 《농정촬요(農政撮要)》 《서유견문(西遊見聞)》 《태서신사(泰西新史)》 등이었다. 한국이 일본에 병합된 다음 모든 출판은 1909년 2월에 법률 제6호로 공포된 출판법의 혹심한 제재를 받게 되어 암흑시대로 접어들었다. 모든 출판물은 원고의 사전검열 ·납본검열 때문에 국민적 의식, 민족문화의 촉진제로서의 양서출판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환경하에서 출판되는 책이란 대개 계몽적인 저술이거나 소설류였다. 재래의 국민교양서였던 《천자문》 《통감》 《명심보감》 《격몽요결》 등 한서(漢書)의 대역판이나 고대소설류, 외국명작의 번안이 성하였다. 좀더 고급의 것으로는 고유문화의 앙양을 위한 양서출판이 있었는데, 그러한 업적이 뚜렷한 출판사로는 1906년에 설립된 신문관(新文館), 1908년에 설립된 회동서관(滙東書館) 등이 있다.

신문관이 대중계몽을 위해 출판한 것으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13년을 전후해서 20여 종이 출판된 이른바 《육전소설》로서 책값이 6전이었는데, 한국고전문학을 많은 독자들에게 올바로 전달하려는 동포애의 충정에서 기획 ·발간된 것이었다. 회동서관은 일반 단행본을 주로 해서 37년까지 100여 종의 고대소설 ·전기 ·번역물을 발행하였다. 고대소설을 제외한 모든 출판물을 출판계약에 따라 인세를 지불하였으며, 특기할 만한 출판물로는 신문관의 ‘육전소설’과는 다른 ‘십전소설(十錢小說)’과 당시로서는 대단한 판매실적을 올린 지석영(池錫永)편의 《자전석요(字典釋要)》가 있다. 회동서관이 설립되던 무렵에 광학서포(廣學書鋪) ·중앙서관(中央書館) ·신구서림(新舊書林) ·박문서관(博文書館) ·휘문관(徽文館) ·보성관(普成館) ·대한서림(大韓書林) 등의 출판사 및 서적상들이 주로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기도 하였다. 1920년에는 출판을 통한 민족정기의 앙양을 도모하고자 민간자본금 30만 원의 주식회사인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가 창설되었다. 본격적인 문고출판은 38년 학예사(學藝社) 간행의 《조선문고》가 시초였고, 그 다음으로 박문서관이 간행한 《박문문고》가 있었는데, 판형은 국반판, 장정은 반양장이었다.

당시의 출판물은 대부분이 문학에 치우쳐 있었다. 45년 8 ·15광복을 전후하여 손꼽을 만한 출판사로는 박문서관 ·영창서관(永昌書館) ·덕흥서림(德興書林) ·이문당(以文堂) ·삼중당(三中堂) ·정음사(正音社)와 한성도서주식회사 등이 있었다. 삼중당은 1931년 고서적상으로 시작하였다가 《하얼빈[哈爾濱]역두의 총성》이라는 책의 출판에 성공함으로써 곧 출판사로 변경하였다. 광복 후에는 잡지와 단행본 ·전집 등을 출판하여 오다가 90년대 초에 폐업하였다. 정음사는 35년 《우리말본》을 출판하기 위하여 창립되었는데, 한글을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심어주려는 숭고한 사명감이 있었고, 광복 후에는 특히 국학(國學) 관계 저서와 《세계문학전집》 등 양서출판으로 더욱 발전을 거듭하여 왔다.

8 ·15광복 후 한때는 출판사가 우후죽순처럼 창립되어서 1,000여 사로 늘어났는데, 그 후 많은 출판사 중에서도 정음사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 ·민중서관(民衆書館) ·두산동아(동아출판사) ·학원사(學園社) ·동국문화사(東國文化社) ·일조각(一潮閣) ·신구문화사(新丘文化社) ·어문각(語文閣) ·현암사(玄岩社) ·계몽사(啓蒙社) ·동화출판공사(同和出版公社) ·일지사(一志社) ·시사영어사(時事英語社) 등이 저술가들을 자극하여 학 ·예술 진흥 및 출판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고, 새로운 출판사들이 계속 창설되어 82년에는 2,179사에 이르렀다. 문고의 간행도 성행하여, 1946년에는 《민중문고(民衆文庫)》가 출판되었고, 47년에 창간, 중단했다가 69년에 속간하게 된 《을유문고(乙酉文庫)》, 47년에 창간되었던 《정음문고(正音文庫)》를 비룻하여 《삼중당문고(三中堂文庫)》 《서문문고(瑞文文庫)》 등이 출판되었다. 오늘날에는 한국의 출판문화도 경제성장과 함께 크게 신장되어 발행종수로 보아 세계 제10위의 출판대국이 되었다. 또, 1983년에는 출판의 꽃이라고 하는 《세계백과사전》(전 30권)이 두산동아에서 출간되고, 이희승(李熙昇)편 《국어대사전》도 민중서림에서 초판발행 20년 만에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컴퓨터 조판기술도 개발되어 한국에서는 아가페출판사가 처음으로 82년 10월 《성경성구대전(聖經聖句大全)》 7권을 컴퓨터에 의해 편찬 ·발행하였다. 한편, 두산동아 ·금성출판사(金星出版社)와 삼화인쇄(三和印刷) 등도 컴퓨터 조판 시설을 도입 ·가동 중이어서 출판의 컴퓨터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 ·중 ·소 출판기업의 격차의 심화와 컴퓨터에 의한 기술혁신에 대한 대처, 그리고 독자의 저변확대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편, 출판사들의 단체로는 대한출판문화협회(大韓出版文化協會)가 있고, 출판에 관한 연구단체로 한국출판학회(韓國出版學會)가 있으며, 출판에 관한 교육기관으로는 대한출판문화협회 부설 편집인대학강좌(編輯人大學講座), 중앙대학 신문방송대학원의 출판 ·잡지 전공, 혜전전문대학(彗田專門大學) 출판과(出版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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