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의 실용화

천문학의 실용화

뉴턴에 의하여 이 탄생하는 한편, 15,16세기는 원양항해의 시대라고 할 만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바스쿠 다 가마의 남아프리카의 을 도는 인도항로의 발견이 잇달았다. 이러한 항해에서 배의 해상위치(經緯度)의 결정에는 천문관측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태양 ·달 ·항성의 위치측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1667년에 파리 천문대, 1673년 그리니치천문대가 각각 창설되었고, 원양항해나 측지학을 위한 천문학의 연구가 그 주된 목적이었다. 이 시대부터 관측기계, 특히 천문시계의 제작기술이 발달되었고, 이것을 이용해서 (光行差) ·(章動) 현상이 18세기에 발견되어, 천체력(天體曆)이나 항해력(航海曆)도 각 천문대에서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파리천문대는 주로 측지학에 치중하여 지구의 크기를 측정하고, 1790년 프랑스 학사원(學士院)은 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실용면 외에도 한편으로는 I.칸트의 우주론과 같은, 우주나 태양계의 기원에 관한 의론이 18세기에 들어 성행하게 되었다. 또 19세기에 들어 허셜 부자(父子)는 항성의 통계적 관측으로 은하계(銀河系)의 구조를 탐사하였는데, 이는 항성통계학의 시초를 마련하였다. 1838년 독일의 F.W.베셀은 처음으로 백조자리 61번 별의 연주시차(年周視差) 0.314″를 측정하여 항성의 거리측정, 나아가서는 우주 측량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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