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찬송가

한국의 찬송가

한국에서 찬송가가 처음 출판된 것은 1894년이었다.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H.G.언더우드(1859∼1915)가 펴낸 《찬양가》가 곧 그것이며 곡조 찬송으로서 모두 117장이었고 이 중 8편의 가사가 한국인 작사로 되어 있다.

이보다 2년 앞서 감리교의 G.H.존스와 L.C.로스와일러가 펴낸 수형본(手形本)과 백홍준(白鴻俊)이 중국 찬송가를 번역하여 서북지방에 보급시킨 것이 있기는 하나 본격적인 것은 언더우드의 《찬양가》가 처음이었다.

이후 북장로교에서 발행한 《찬셩시》(1895), 감리교의 《찬미가》, 윤치호(尹致昊) 편의 《찬미가》(1905) 등이 불려오다가 1908년에 완성된 장로교 ·감리교 연합공의회 편의 《찬송가》가 나옴으로써 양대 교파는 하나의 찬송을 20년간 부르게 되었다.

한편, 동양선교회는 한국에 성결교단을 창설, 1911년 《복음가》를 발행하고, 침례교회에서도 1900년에 《복음찬미》를 발행하여 독자적인 찬송을 불렀다. 1924년 예수교 연합공의회는 《신정 찬송가》를 발행하기로 하고 4년만인 1928년에 그 편집을 끝냈으나 화재로 소실, 재차 편집에 착수하여 31년에 햇빛을 보았다.

그러나 장로교에서 1935년 400장의 《신편 찬송가》를 단독으로 발행, 모처럼의 연합은 다시 깨어졌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장로교·감리교·성결교 등 3대 교단은 다시 찬송가의 합동을 결의, 1948년 《합동 찬송가》를 발행하였으나 장로교 일부에서 그 사용을 거부하고 계속 《신편 찬송가》만을 써오다가 마침내 1962년 《새찬송가》를 내놓았다.

한편, 합동 찬송가를 불러오던 교파에서는 《합동 찬송가》의 미흡한 점을 개편하기 위해 한국찬송가위원회를 조직, 1967년에 총 620장의 《개편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이렇듯 3찬송가가 혼선을 빚자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소리가 높아져 새로이 발족한 찬송가공회(公會)에서는 통일작업에 착수하여 1983년에 《찬송가》를 발행하였다. 찬송가는 개신교회의 경우, 교회음악의 중심인 회중가(會衆歌)의 성격을 띤다.

그것은 회중이 자국어로 제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로 단순하고 부르기 쉬운 찬송가가 많다. 회중가로서의 찬송가는 보통 오르간에 의해 뒷받침되며, 때로는 코랄을 소재로 한 칸타타나 앤섬(anthem) 혹은 오르간코랄 등의 형식으로 예술적 연주도 한다. 독일복음교회(루터교회)나 영국국교회()같이 전례를 중요시하는 교파의 찬송가는 책의 절반을 교회력(敎會曆)의 항목에 따라 배열하고 있으나 전례에 그다지 치중하지 않는 교파의 찬송가는 그 배열이 다소 달라진다.

한국의 찬송가는 지금까지 후자의 길을 걸어왔으나, 차차 개신교에서도 전례와 교회력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1983년판 《찬송가》에서도 아직은 종래의 찬송가와 같이 후자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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