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도

한국의 지도

한국에서도 세계의 근대지도가 작성되기 이전에 이미 많은 지도가 간행되었다. 이들 지도는 그 질이나 양에서 자랑할 만큼 우수한 것이 많았지만 , 에 상당량이 약탈당했다. 일본의 주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고지도 중에도 한국 지도를 변조한 것이 있다고 전해진다. 한국의 지도 발달을 시기적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의 4기로 나뉜다.

〈제1기〉 고대부터 14세기의 고려 말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 시기의 지도는 현존한 것이 없다. 그러나 문헌에는 많은 지도 기록이 남아 있다.

〈제2기〉 15∼16세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조선의 건국 이후이며, 선교사에 의해 전해진 서양문물의 영향을 입은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한문으로 번역된 서양 지리서가 중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고, 결과적으로 이슬람의 아라비아 지리학의 영향을 받은 식(式)의 세계지도가 도입되어 한국의 지도제작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 시기에 조선왕조의 성립과 아울러 정치적·군사적 필요에 따라 우수한 지도가 많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도난당해 각지의 국립·사립 박물관이나 류코쿠[龍谷]대학, 덴리[天理]대학 등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많다.

〈제3기〉 17세기 이후 선교사 마테오리치(Mateo Ricci:利馬竇) 등에 의해 서양지도에 관한 지식이 중국을 거쳐 도입됨으로써 그 영향을 직접 받았다. 대체로 조선시대 말까지의 시기가 된다. 이 시기는 비교적 서양지리학의 영향을 크게 받아 한국의 지리학과 지도학에 과학적 기초가 부여된 시기이다. 한국 지도 중에는 (李薈) 등이 1402년에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가 있다. 이 지도는 동양 최초의 세계지도로 널리 알려진 지도이며,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아라비아의 지도학적 지식, 중국 고대의 영향, 일본의 지도 지식과 고려시대로부터 발달되어 온 조선 초기의 지도학 및 지리학 지식이 한 장의 지도에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지도 발달사에 큰 의의가 있는 지도이다. 고산자 김정호(金正浩)의 《청구도(靑丘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대동지지(大東地誌)》 등은 모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와 지리서이다.

〈제4기〉 근대지도가 제작되는 시기로서 조선시대 말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기이다. 1930년까지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여러 면에서 많이 이용되다가, 러·일전쟁을 전후하여 일본군이 아시아 침략의 준비작업으로서 한국의 5만분의 1 를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에 의하여 정확한 전국 지도가 간행되었다.

광복 후에는 육군측지대(測地隊)에서, 일본육군참모본부 간행의 지형도와 미군이 태평양전쟁을 완수하기 위하여 간행한 지형도 등을 토대로 하여 5만분의 1 지형도를 편찬하였다. 한편 국토지리정보원은 국립지리연구소·국립건설연구소·국립지리원 등에서 기구가 바뀌면서 5,000·2만 5000·5만 분의 1 지형도를 비롯하여 20만분의 1 지세도, 100만분의 1 전도 등을 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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