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염직

중국의 염직

중국의 염직은 이미 한대에 뛰어난 견직물(絹織物)이 만들어진 것이 중앙아시아의 누란지방(樓蘭地方)과 외몽골의 노인울라에서 출토된 유품에서 엿볼 수 있다. 한대 이전은 비내구성 ·소모품이라는 섬유가 가지는 특수성으로 유품을 얻기가 곤란하다. 그러나 한대 유품의 자수(刺繡) ·금(錦) ·능(緩) ·나(羅) 등의 원류(源流)가 상당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전국시대의 청동제 인물상에 나타나는 착의의 정교한 가식(加飾) 문양과 같은 전국시대의 [河南省] 진춴[金村] 고분출토의 수렵문경(狩獵文鏡)에 그려진 기마인물의 갑옷 아래에 보이는 의복에서도 추측된다.

육조로부터 삼국(三國)을 거쳐 수(隋)에 이르는 동안은 한대 염직의 전통이 이어져나가지만, 를 통한 서방과의 접촉이 점차로 밀도를 더함에 따라서 문양 ·기술면에 서방적인 영향이 가해지고, 당대에는 그 정점에 달한다.

비단에 색실 사용법의 날실[經絲]에서 씨실[緯絲]에의 이행도, 중국 본토에서 행하여진 자발적 기법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란의 사위금(絲緯錦)의 유입이 직접적 자극이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송대에 들어서서 염직품은 세계적인 것으로 확립된다. 이것은 원나라 때 혼란을 가져오지만, 명으로 들어서면서 송에의 복귀라는 르네상스적 기풍과 인도 ·유럽과의 교류로, 더욱 순화되어 화려해진다.

금란(金爛) ·단자(緞子) ·간도(間道) 등의 염직품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청대의 염직공예는 대체로 명대의 계승이라 간주되지만, 표면적인 화려함을 추구한 나머지 말초적인 기술에 구애받게 된다. 그리고 청대 중기 이후는 이 기술마저도 조잡해져서 옛 면목은 사라져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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