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대의 중국문학

송원대의 중국문학

  당대의 시는 국민문학 으로서의 일반성을 띠었으나, 송대(960∼1279)에는 문인중심의 문학이 되어, 표현기법도 더욱 섬세해졌다. 신변의 일상생활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11세기의 구양 수 ·소식, 12세기의 육유(陸游) ·범성대(范成大) 등이 그 방면의 대표자이다. 한편, 시의 발전으로서 사(詞)라고 하는 새로운 문학형식이 당말부터 생겨났으며, 뒤얽힌 장단구(長短句)의 형식에 가냘픈 시정(詩情)을 실었다. 사는 오대(五代:907∼960)의 이호(李顥) ·이욱(李煜) 등을 거쳐 위치를 확립했으나 송나라의 유영(柳永)이 새 형식을 시도하여 그 작품이 방방곡곡에서 불리었다. 이러한 가곡의 유행은 가극의 성립을 촉구했으며 원대(1271∼1368)에는 4절(四折:4막)을 원칙으로 하는 잡극(雜劇:元曲)이 완성되었다. 이것은 노래하는 곡(曲)의 부분과 대사를 말하는 백(白)의 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이민족의 지배하에서 뜻을 펴지 못하는 문인들이 불타는 정열로 많은 걸작을 남겼다. 특히 관한경(關漢卿)의 《두아원(竇娥寃)》, 마치원(馬致遠)의 《한궁추(漢宮秋)》, 백박(白璞)의 《오동우(梧桐雨)》,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 등이 유명하다. 통속문학으로서는 당대에 불교를 배경으로 한 그림풀이나 야담같은 것이 있었는데, 송대가 되자 인쇄술의 발달, 서민문화의 흥성 등과 발맞추어 통속소설이 성행하게 되었다. 본래는 번화가의 야담가가 하던 야담 ·군담(軍談)에서 발전한 것인만큼 구연(口演)의 흔적을 남긴 것도 적지 않았으나, 차차 짜임새를 가다듬고 수준높은 기법을 구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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