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 ·위 ·진 ·남북조대의 중국문학

삼국 ·위 ·진 ·남북조대의 중국문학

 적벽전(赤壁戰)이나 제갈 공명(諸葛孔明)의 이야기를 비롯하여 삼국시대에는 문학적으로 좋은 소재가 많다. 또 위(魏)나라(220∼265)부터 진(晉)나라(서진 265∼316, 동진 317∼419)까지는 청담(淸談)이 유행하였다. 위나라의 완적(阮籍) 등 칠현(七賢)이 죽림(竹林)에 숨어서 세속을 떠난 이야기로 지냈다는 것은 노장(老莊)사상에 따른 한적(閑適)의 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사실은 변화하는 시대에 처하여 새로운 윤리를 확립할 수 없었던 지식인들의 고뇌를 상징하는 행동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진말(晉末)의 도연명(陶淵明)의 전원시는 밝고 건강하며, 사영운(謝靈運)의 산수시(山水詩)도 특색이 있다. 또한 진초(晉初)의 육기(陸機) ·육운(陸雲) 형제는 부(賦)의 기교를 써서 을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이 무렵의 소설은 간보(干寶)의 《수신기(搜神記)》처럼 귀신 ·괴이(怪異)의 세계를 그리고 신비주의의 경향이 짙었다. 남조(南朝)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은 동진(東晉)을 이어 난징[南京]에 도읍을 두었으며, 강남의 화려한 풍토문물을 반영하여 염려(艶麗)한 시문을 낳았고, 그 작품이 당초(唐初)로 이어졌다. 문예를 애호하는 이 시대의 풍조에 따라 양나라(6세기)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그 때까지의 시문 중 가작을 모아 《문선(文選)》을 엮었는데, 널리 애독되었다. 이 무렵에는 시문의 평론서로서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과 종영(鍾嶸)의 《시품(詩品)》이 나오는 등 문학감상의 수준이 보다 향상되었고, 인도의 음운학(音韻學)의 영향을 받아 시가의 음률(音律)에 관한 자각이 깊어져 심약(深約)의 ‘사성팔병설(四聲八病說)’ 등 시의 리듬에 관한 이론도 생겨났으며, 격식을 갖춘 당대의 근체시(近體詩)가 성립하는 기초를 다졌다. 격식에 구애되지 않는 당 이전의 시를 고시(古詩)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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