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년연합회

조선소년연합회

[ 朝鮮少年聯合會 ]

요약 1927년에 결성한 어린이 연합 운동단체.
구분 운동단체
설립일 1927년 10월 16일
설립목적 소년운동의 통일
주요활동/업무 어린이날 행사, 소년 잡지 후원

당시 국내의 어린이 단체는 1923년 방정환(方定煥)·조철호(趙喆鎬) 등이 조직한 소년운동협회와 1925년 정홍교(丁洪敎)·박준표(朴俊杓) 등이 조직한 오월회로 양분되어 있었다. 소년운동협회 지도자들이 색채를 띤 반면, 오월회 지도자들은 자들로 두 단체는 불필요하게 서로 대립하였다. 그러다 1927년 10월 16일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전국 52개 단체의 대표 96명이 참가한 가운데 조선소년연합회 창립대회를 개최하였다.

위원장에 방정환, 중앙 상무서기에 고장환(高長煥)·연성흠(延星欽)을 비롯해 25명의 중앙집행위원과 5명의 중앙검사원이 선출되었다. 그 밖에 선전부장 정홍교, 조사연구부 부장 추병환(秋秉桓), 교양부 부장 전백(全柏), 출판부 부장 김병욱(金炳旭), 체육부 부장 서겸순(徐謙淳), 재정부 부장 최청곡(崔靑谷) 등이 임명되었다.

또한 "조선소년운동의 통일적 조직과 충실한 발달을 꾀함", "조선소년운동에 관한 연구와 그 실현을 꾀함"이라는 내용의 도 발표하였다. 가입연령은 18세 이하이고 어린이의 자율적 운영을 위해 지도자에게는 발언권과 만 주었다. 과 건전한 을 다루는 소년 잡지를 후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가맹단체로부터 매년 일정액의 협회비를 징수하여 협회를 운영하였다.

한편 색동회에서 어린이날로 정했던 5월 1일을 5월의 첫째 일요일로 변경하였다. 그 이유는 일제 당국이 5월 1일이 메이데이(May Day)와 겹친다고 하여 어린이날 행사를 허가하지 않았으며 평일의 경우 어린이들이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막고자 수업을 강행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1928년 3월 제2회 정기총회에서 세력이 자신들만으로 임원을 구성하고 단체의 명칭도 조선소년총동맹으로 바꿈으로써 조선소년연합회는 1년도 채 되지 못하여 해체되었다. 1931년부터 일제의 탄압이 갈수록 심해져 1937년부터는 아예 어린이날 행사가 금지되었고 소년운동단체도 강제로 해산되었다.
1946년 5월 5일은 8·15 광복 후 첫 번째 어린이날이었는데, 이 날을 기념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확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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