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화사업

한국의 전화사업

한국에서 전화가 사용되기 시작된 것은 1896년 당시 (宮內部) 주관으로 궁중에서 각 아문(衙門)과 연락을 위해 덕수궁에 전화시설을 마련하여 각 아문은 물론 인천에 있는 감리소(監理所)에까지 전화를 개통하면서부터이다. 당시의 전화는 덕률풍(德律風) 또는 득률풍(得律風)·전어기(傳語機) 등으로 불리었다.

1902년 3월 서울∼인천 사이의 전화가 가설되었고, 같은 해 6월 시내교환전화가 가설되었다. 1903년 부산에도 전화가 가설되었다. 당시의 전화기는 에릭슨사(社)에서 제작한 자석식 단식교환기와 벽괘형(壁掛型) 전화기였다. 1905년 한국 통신권이 에 의해 강탈당함에 따라 한국의 전화사업도 일본의 손에 넘어가, 때까지 40년간 일본인에 의하여 운영되었다. 당시의 시설은 각종 단식 교환기 40석, 벽괘형 교환기 8석, 시외교환기 6석이었다.

일제가 지배하던 40년간 한국의 전화는 그들의 식민정책과 대륙침략 정책으로 많은 발전을 보았으나 그 대부분은 관용이었으며 민간이 사용한 전화도 대부분 일본인이 점유하였다. 교환방식은 자석식에서 공전식으로, 다음에 자동식으로 바꾸었다. 1935년 자동식으로 ST식이 채택되었다.

8·15광복과 더불어 한국 통신권이 부활하여 강한 의욕을 가지고 전화의 운용에 힘썼으나 6·25전쟁으로 전화시설은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1950년대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 복구에 전력했으나 별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1960년부터 전화 공급은 점차 본격화하기 시작하여 종전부터 사용하던 ST방식 이외에 EMD방식의 교환기가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교환기의 국산화도 활발히 추진되어, 1962년 ST교환기의 국산화가 처음으로 이루어졌고, 1965년 EMD교환기의 국산화가 이루어졌다.

1976년 전자교환방식의 교환기 채택이 결정되었으며 1978년 전자교환기 2만 회선의 구매계약이 체결되어 1979년 개통되었다. 1982년 한국전기통신공사가 발족하면서 한국의 전화사업은 도약기를 맞이하였다. 종래의 ST형, EMD형 교환기의 생산을 중단하고 전자교환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고, 자동화 추세에 따라 시외전화의 DDD화, 국제전화의 자동화(ISD)가 이루어졌다.

1986년 3월에는 세계에서 10번째로 국산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에 성공하여 중소도시에는 티디엑스(TDX-1A)를 설비하고 대도시에는 용량이 증대된 티디엑스(TDX-1B)를 공급하였다. 1987년 1,000만 회선의 전화가 완비되어 1가구 1전화시대를 이루었으며, 1990년 10월 오산전화국 개통과 더불어 1,500만 회선을 돌파하여 세계 제9위의 전화시설 보유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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