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과 전위예술

연극과 전위예술

전위가 후위(後衛)로 돌아갔을 때, 일찍이 전위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라고 극작가 이오네스코가 말했듯이 전위가 갖는 새로움에는 상대적인 점이 있으나, 연극에서는 19세기 말경부터 그 징후를 보이기 시작한 반자연주의적 경향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뷔히너의 《당통의 죽음》(1853) 등의 희곡이나 A.자리의 《위뷔왕(王)》의 초연(初演)(96)으로 거슬러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아피아, 후크스의 무대기구상(舞臺機構上)의 혁신, 크레이그의 새로운 연극표현의 모색 등을 선구로 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부터 활발하게 활동한 초현실주의 ·미래파 ·표현주의 ·구성파(構成派) ·다다이즘운동 등과도 관련을 가진 실험적 연극운동을 전위극의 가장 가까운 개념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며, 실험연극(實驗演劇)이라는 명칭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경향으로서는 이탈리아의 마리네티 등 미래파의 그로테스크, 의 비환상적(非幻想的) 극작법이 눈에 띄고, 독일에서는 표현주의 작가들의 연극공간(演劇空間)의 확대와 몸짓이나 절규 등을 통한 표현방법의 모색, 그리고 를 통한 연극의 모든 구성요소를 통일하려는 시도 등이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아르토에 의한 잔혹극(殘酷劇)의 제창 등을 들 수 있다.

연출면에서는 우선 독일에서 표현주의의 화가 코코슈카나 슈토룸의 무대시도(舞臺試圖)가 가장 빠르고, 트리뷰네좌(座)의 말틴에 이어 예스나가 계단무대로 유행을 만들었다. 비스카톨은 급진적인 정치연극을 기계적인 무대장치와 결부시켜 추진하였고, 브레히트의 서사연극(敍事演劇)에도 영향을 주었다.

소련에서는 팬터마임을 중요시한 타이로프, 스타니슬랍스키 문하에서 배출된 연출가로서 광채(光彩)와 색조(色調)가 풍부한 와프탄고프가 등장했고 에프레이노프도 이 양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기구적(機構的) 무대와 율동적 연기를 중시한 메이에르홀트도 강력한 연출을 통해 새로운 무대공간을 획득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코포의 뷔콜롱비에좌(座)에서 다시 쥬베, 듀랑, 파티, 되토에프 등 4명의 전위극단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연극이 탄생하였다. 부조리극(不條理劇)의 극작가나 신진 연출가들에게서도 제l차 세계대전 후의 전위극운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증거가 나타나 있다. ‘전위’라고 분명히 못을 박은 행사로서 포리에리가 1957년 마르세유에서 개최한 전위극페스티벌이 있다. 그로테스크 ·팬터마임 ·잔혹극 ·쇼크의 효과 등은 동구권(東歐圈)까지 포함한 많은 작가 ·연출가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해프닝 ·비트 ·팝 아트 등 시대의 최첨단적인 유행 현상을 가미한 연극, 그리고 극장을 부정한 정치적인 가두극(街頭劇) 등 현대의 전위연극은 다양하면서도 혼돈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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