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기

한국의 장기

1919년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최남선(崔南善)의 저서 《백과사전(百科事典)》 <유희편(遊戱篇)>을 보면 현행 장기는 중국 송나라 때 고려로 전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장기에 관한 문헌으로는 서거정(徐居正:1420∼88)의 글에 의하면 세종의 중신 김석정(金石亭)과 (金禮蒙)이 상희대국(象戱對局)을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추측하건대, 장기가 전래된 후 조선시대에 이르도록 양반계급이나 고관들만이 즐기던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다른 기록에 의하면 장기의 명칭이 개정되기 전에는 혁기(奕棋) ·상기(象棋) ·상희(象戱) 등으로 명칭도 다양했던 모양이다. 또다른 장기문헌으로는 1560년 삼도예찰사(三道禮察使) 심수경(沈守慶)의 저서 《유한잡록(遺閑雜錄)》에 장기의 차(車) ·포(包) ·마(馬) ·상(象) ·사(士) ·졸(卒)이 기록되어 있다. 8 ·15광복 후 늦은 감이 있기는 하나 1956년 10월 10일, 장기계의 유지들이 모여 보다 체계적으로 장기의 기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기도원을 창설하였다. 1967년에는 다시 한국장기원으로 개칭하였고, 1973년에 와서 한국장기협회로 개칭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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