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연극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연극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연극은 수많은 연극 현상과 고전적 의의가 있는 우수한 희곡의 부재로 그 전체적 성격을 요약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군소 제후국으로 분열되어 있는 사회적 상황이 미술 ·조각 등의 예술과는 달리 재정적 규모가 큰 연극을 지원하기에는 힘겨웠고, 둘째 실제적인 공연이나 창작보다는 연극이론에 비중을 둔 연극계의 풍토가 작용한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특징짓는 연극현상으로는 콤메디아 에루디타(commedia Erudita) ·인터메치(Intermezzi) ·전원극(田園劇:pastorale) 오페라(Opera)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등의 연극형태와 극장 개발을 들 수 있다. 콤메디아 에루디타는 귀족이나 학자들이 즐기는 고전연극이었다. 비극 작가로는 G.트리시노(1478∼1550), 희극 작가로는 L.아리오스토(1474∼1533), M.마키아벨리(1469∼1527)가 있었는데 특히 희극이 환영을 받았다. 우수한 작품으로는 마키아벨리의 《만드라골라:Mandragola》를 들 수 있다.

전원극은 그리스의 세이타극과 유사한 것으로 전원을 배경으로 요정 ·목동 등이 나와 사랑의 이야기를 편다. 대표적 작가로는 타소(1544∼95)를 들 수 있다.

인터메치는 극과 극 사이에 공연되는 막간극에서 발전한 연극형태이다. 인터메치는 무대기술면에서 변화 있고 화려한 무대장치와 트릭을 사용한 스펙터클 연극이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우화나 신화가 주종을 이루었으며 후에 오페라에 흡수되어 1650년경에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오페라는 그 당시 이탈리아인들이 즐겨 공연한 형식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무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 시도는 피렌체에 있던 ‘카메라타 아카데미’라는 학자들의 모임에서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 비극의 합창단에 관심을 갖고 대사를 반주에 맞추어 노래로 표현하는 형식을 개발하여 이를 오페라라고 부른 것이다. 첫 작품은 1597년 공연한 《다프네:Dafne》로서 O.리누치니와 G.카치니가 공동으로 썼고, 곡은 J.페리가 붙였다. 내용은 주로 해피엔딩이었고, 인터메치의 화려한 무대장치가 융합되었다.

콤메디아 델라르테는 콤메디아 에루디타와는 달리 대중적 연극으로서 민중즉흥극이라고도 표현되는데, 그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로마시대의 아텔란(Atellan) 소극이 모체라는 설 외에도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서방으로 피신한 비잔틴의 마임 배우들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설,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의 희극을 무언극화한 배우들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설 등이 있으나 모두 확실하지 않고, 다만 1550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진다.

콤메디아 델라르테의 특징은 우선 배우 위주의 연극이며, 희곡대사에 따라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 연기로 표현하며 또한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는 희극적 인물이 등장하며, 어떤 장소에도 구애됨이 없는 적응성 있는 연극이라는 점 등이다. 그래서 배우는 희곡작품 대신 이야기의 요점을 적은 시나리오를 사용했으며,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내용을 즉흥적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리고 장소도 옥외의 임시무대나 실내극장에 모두 적용할 수 있었으며 배우들은 자기가 특기로 하는 역을 계속 맡았다. 콤메디아 델라르테는 50년 이후 약 100년간 가장 활발한 공연을 했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끼쳤으나 이탈리아 연극계에는 이렇다할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극장은 로마의 극장구조에 기초를 둔 실내극장으로 프로시니엄(proscenium) 스테이지가 그 특징을 이루었다. 최초의 현대식 극장은 올림픽극장으로 건축가 A.팔라디오가 80년에 착공, 그의 제자 V.스카모치가 4년 만에 완공시켰는데, 원근법을 나타낸 극장으로 유명하다. 이어 스카모치는 영구적 프로시니엄 무대를 갖춘 파르네스극장을 1618년 완공하였다. 이 시대의 극장은 실내극장이었기 때문에 램프나 가스등으로 무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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