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육군

한국의 육군

M4 A-3 셔먼

M4 A-3 셔먼

한국의 육군은 정부의 수립과 동시에 조선경비대를 모체로 하여 1948년 8월 15일에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광복과 함께 자주국방력 보유라는 명분 아래 일본군·만주군·중국군·광복군 출신자들을 주축으로 한 사설군사단체 혹은 유사군사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 그해 11월에는 그 수가 무려 60을 헤아리게 되었다.

이 같은 난립의 폐해를 막기 위해 미군정 당국은 국방경비대 창설을 앞두고 이들 단체에 대한 해체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1946년 1월 14일, 미군정 당국에 의해서 남조선 국방경비대가 약 1개 연대의 병력으로 창설되게 되었으며, 4월에는 제2~8연대를 증설하였다. 이어 동년 6월에는 '군정법령'에 의하여 국방경비대는 조선경비대로 개칭되고 국방경비사관학교는 조선경비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모병(募兵)에 의해서 1946년 11월에는 제9연대를 증설한 데 이어 1948년 5월까지 제10·12·13·14·15연대를, 1948년 11월부터 1949년 1월 사이에는 다시 제16·17·18·19·21·23·25연대를 편설하게 되었다.

연대의 증설에 따라 3개 연대를 1개 여단으로 하는 여단 편성에 착수하여 1947년 12월에 제1·2·3여단, 1948년에는 제4·5여단을 창설하였으며, 1949년에는 여단을 사단으로 승격시켜, 기존의 여단으로 수도사단 및 제1·3·5·6사단을 편성하였고, 그후, 1년 사이에 다시 제7·8사단을 창설하였다.

한편, 간부양성을 목표로 1945년 군사영어학교를 설치하여 창군 간부 200명을 배출하였고, 1946년 5월 남조선 국방경비대 사관학교를 설립한 데 이어, 1947년에 통신학교, 1948년에는 보병학교와 제2·3 및 1 훈련학교를 설립하여 교육훈련에 임하였다.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동시에 조선경비대를 육군으로 개칭하였으며, 11월 3일에는 국군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국방부 산하에 육군본부를 두게 되었다. 여기에는 보병·기병(騎兵)·포병·공병·통신·기갑·방공·헌병·항공의 9개 병과를 두었으며, 중에 수송·화학·정훈·여군·군종 병과가 창설되었다. 전후 기병과는 없어지고 방공은 포병에 흡수되었으며, 정보병과가 새로 생겼다.

1950년 6월, 6·25전쟁을 맞게 된 당시의 육군은 3개 보병연대로 편성된 8개 사단과 1개 기갑연대 및 1개 독립연대로 된 약 10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비는 미군이 철수할 때 인수한 소총류와 105mm 곡사포 88문, 로켓포(바주카) 약 1,900문, 장갑차 24대가 전부였으며 전차는 전무하였고, 포를 1문도 장비하지 못한 사단이 있을 정도였다.

이와 같은 상태로 공산군의 기습공격을 받은 육군은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초전에 참담한 전투를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유엔군의 참전에 의한 연합작전·공지협동작전·· 등의 여러 작전에 참가하면서 현대적인 전략·전술을 익히는 한편, 전쟁 말기부터 병력증강과 장비의 현대화에 착수하는 등 귀중한 체험을 바탕으로 육군 현대화의 기초를 다지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성립된 후에도 병력증강이 진행되었고, 1954년까지 제1 및 2군 사령부와 군수기지사령부·군관구사령부, 10개 예비사단이 창설되었다. 1964∼1966년 사이에는 베트남의 요청에 따라 사상 최초로 2개 전투 사단과 군수 지원부대 등 약 4만 명의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하여 그 용맹을 세계에 과시하고 국위를 선양하기도 하였다.

이어 한국육군은 1991년의 에 154명의 의료단을 참여시켰고, 1993년 6월~1994년 4월에는 유엔 회원국으로서 처음으로 유엔평화유지군으로 240여 명을 ‘육군상록수부대’라는 이름으로 에 파병하였다.

현재 육군은 약 54만 명의 병력을 보유한 상태이며, M16 소총을 비롯한 기관총·화포··전차·헬리콥터·미사일 등 최신예 무기를 장비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국산품으로 충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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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47 전차

M47 전차 중량 46톤, 속력 48km/h, 항속거리 128km, 승무원 5명, 화력 90m/m포 기총3MG. 6.25당시 미군이 사용하였으며, 1952년부터는 한국군도 이를 인수하여 북한군과 격전하였다.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