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기 우주개발

제2기 우주개발

유럽의 각국도 우주개발에 적극 참여하려 했으나 그 결과는 부진하였다. 그러나 1965년 11월 는 자체 개발한 디아망 3단 로켓으로 최초의 인공위성 A1을 발사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공위성 발사의 기술은 10년간 미국과 소련의 독점시대가 끝나게 되었다. 1970년 2월 일본, 같은 해 4월 중국 등에 의한 인공위성 발사가 이어졌다.

인공위성 경쟁과 함께 우주선을 이용한 달의 개척도 치열하였다. 달에 처음으로 탐사선을 보내고 달의 뒷면을 촬영하기는 소련이 먼저였으나 이 기간에 미국은 아폴로계획으로 1969년 아폴로 11호에 암스트롱이 탑승하여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게 됨으로써 우주개발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1972년 12월까지 11호에서 17호까지(13호는 고장으로 도중 귀환) 6회에 걸쳐 달을 탐사했고 모두 385kg의 월석(月石)을 지구에 가지고 돌아왔다. 1974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연(延) 171일간 9인의 가 체재하여 방대한 실험자료를 구득했다.

이와 함께 우주정거장도 띄우기 시작하였는데,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1971년 소련이 발사한 살류트이며, 미국의 우주정거장 스카이래브(sky-lab)는 1973년에 지구궤도에 올려져 1980년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사용 중인 우주정거장은 1986년 소련이 쏘아올린 미르이다. 무엇보다 이 시기의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는 1972년 5월 미국과 소련간의 협정 조인에 따라 1975년 7월 15일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을 마감하는 협조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소련이 발사한 소유스 19호가 궤도에 오른 뒤 미국의 아폴로 18호가 지상을 출발하여 궤도상에서 도킹하여 공동실험을 한 뒤에 다시 분리한 뒤 무사히 자기 나라로 귀환했다. 이것을 ASTP(Apollo-Soyuz Test Project)라고 부르며 이것을 끝으로 제2기의 우주개발의 막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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