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수술의 역사

외과수술의 역사

늙은 나무에 생긴 구멍을 메우는 일은 일찍이 BC 300년 그리스의 유명한 식물학자이며 식물학 발전의 시조라고 하는 데오프라스투스가 상처구멍을 진흙으로 메웠다는 기록이 있다. 상처구멍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하여 쓴 최초 문헌은 1640년 영국의 T.로톤이 로 채우는 방법을 기록하였으며, 1970년에는 굳은 점토(粘土)와 말린 풀을 섞어서 구멍을 메우는 방법을 기록하였고, 1990년 영국에서 신선한 쇠똥, 묵은 석회, 재와 모래를 섞어서 구멍을 채웠는데 결과가 좋았으며, 아직도 그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00년 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전충재료(塡充材料)로서 나뭇조각 ·벽돌 ·진흙 ·모르타르 ·석회 그 밖의 특수재료를 쓰게 되었고, 특히 지난 90년 동안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여 유럽 각국에는 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업체가 등장하였다.

미국 코네티컷주(州)에서 F.A.바틀렛은 바틀렛 수목연구소(The Bartlett Tree Research Laboratorise)를 설치한 다음 수목 전문회사와 외과수술 전문학교를 부속기관으로 설치하여 많은 젊은이를 훈련함과 동시에 외과수술을 기업적으로 지난 90년 동안 실시하였다. 수술에 알맞은 적절한 도구의 개발과 전충재료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통하여 많은 특허제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흔히 사용되는 재료는 시멘트 · 제품 ·나뭇조각 ·고무제품 ·아스팔트 제품, 갖가지의 철판류 및 (urethane) 등이다.

한국에서도 1980년 우레탄을 활용하기 시작하였고, 창경궁 안에 있는 고사 직전의 몇 나무에 실시하였다. 한국에서 나무에 대한 외과수술을 실시한 것은 속리산 입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이품송을 들 수 있다. 정이품송에 대한 수술은 2차 ·3차로 실시하여 좋은 성과를 얻었으나, 행정당국에서 외과수술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1977년부터이다. 1977년 12월 24일~1978년 1월 23일 사이에 전남 장성군 장성읍의 왕버들(천연기념물 80호)과 전남 구례군의 화엄사 올벚나무(천연기념물 38호)에 대한 외과수술을 실시하였다.

당시에는 외과수술이란 말을 이해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방부처리(防腐處理)라는 말로 통용하였다. 즉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살균을 하여 더 이상 썩지 않도록 했기 때문에 쉽게 납득이 되었다. 그 후 천연기념물 노거수 24주가 수술됨으로써 식자들 사이에서 외과수술에 대한 효과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수술을 원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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