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 스펜서

다이애나 스펜서

[ Diana Frances Spencer ]

요약 영국 왕실의 전 왕세자빈. 1981년 찰스 왕세자와 결혼한 뒤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을 낳았고, 1996년 이혼하였다. 1997년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글래스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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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1961.7.1 ~ 1997.8.31
본명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
국적 영국
출생지 영국 노퍽 샌드링엄

본명은 다이애나 프랜시스 스펜서(Diana Frances Spencer)이다. 1961년 7월 1일 영국 잉글랜드 노퍽카운티의 샌드링엄(Sandringham)에서 올소프 자작(Viscount Althorp) 에드워드 존 스펜서(Edward John Spencer)와 프랜시스 섄드 키드(Frances Shand Kydd)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부계(父系)인 스펜서 가문은 스튜어트왕가의 후손으로서 과도 유대가 깊은 귀족이며, 모계(母系)도 퍼모이 남작(Baron Fermoy) 가문의 귀족이다.

1969년 부모가 이혼한 뒤 아버지에게 양육되었다. 1970년 노퍽의 리들스워스홀스쿨(Riddlesworth Hall School)을 거쳐 1973년 켄트카운티의 세븐오크스(Sevenoaks)에 있는 웨스트히스여학교(West Heath Girls' School)에서 공부하였다. 1975년 아버지가 제8대 스펜서 백작 지위를 계승하여 '레이디' 칭호(The Lady Diana Spencer)를 얻었으며, 1976년 아버지가 레인 레그(Raine Legge)와 재혼하였다. 1977년 스위스의 피니싱스쿨(Finishing School;사교계에 나가기 전의 젊은 여성들에게 상류사회의 에티켓과 교양 등을 교육하는 학교) 인스티투트 알핀 비데마네트(Institut Alpin Videmanette)에 몇 달 간 다녔고, 이 무렵에 언니 세라(Sarah)의 남자친구인 찰스 왕세자(Prince Charles of Wales)를 처음 만났다.

1979년 으로 간 뒤 3명의 여자친구와 아파트에 함께 거주하며 가사도우미, 보모, 유치원 보조교사 등의 일을 하면서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생활하였다. 1980년 찰스 왕세자를 다시 만나기 시작하였고, 1981년 2월 6일 왕세자의 청혼을 수락하였다. 같은 달 24일 약혼을 공식 발표한 뒤 7월 29일 전세계에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런던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영국 왕실의 첫 번째 왕위 승계권자의 아내가 되어 사람들의 선망과 관심을 받았으나 결혼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찰스 왕세자는 결혼 전에 사귀던 카밀라 파커 볼스(Camilla Parker Bowles)와의 관계를 결혼 후에도 계속 유지하였고, 다이애나가 두 아들 윌리엄(Prince William, Duke of Cambridge)과 해리(Prince Henry of Wales)을 낳은 후에도 불화가 지속되었다.

결국 1996년 2월 이혼 합의를 공식 발표한 뒤 8월 28일에 이혼하였다. 이혼 후 왕세자빈의 지위는 잃었으나 에서 거주할 권리와 '웨일스 공주(The Princess of Wales)'라는 공식 직함은 유지하였고, 두 아들에 대한 양육권도 찰스 왕세자와 나누어 가졌다. 이후 왕세자빈 시절부터 펼쳐온 자선활동과 봉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여 AIDS 퇴치, 아프리카 빈민 구호, 적십자 활동, 대인지뢰 제거 운동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한편, 찰스 왕세자와 교제할 때부터 다이애나를 괴롭히던 의 집요한 추적은 이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1997년 8월 31일 프랑스 에서 이집트의 억만장자 도디 알파예드(Dodi Al-Fayed)와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뒤쫓아오는 파파라치를 따돌리려다가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36세로 사망하였다. 장례식은 같은 해 9월 6일 영국 왕실장으로 거행되었으며, 스펜서 가문의 영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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