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왕조의 영국문학

빅토리아왕조의 영국문학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후 1901년까지 여왕 통치가 계속되었다. 빅토리아 여왕 치세(治世)에 산업혁명이 성공하여 영국이 강대한 공업국으로 변모하고 일곱 개의 바다를 지배하는 대제국이 되었다. 중산계급이 부(富)를 축적하고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공리주의적인 윤리를 으뜸으로 받아들였으며, 일반사회에는 낙관주의적인 풍조가 팽배하였다.

이와 같이 형이하적(形而下的)으로는 유례없는 번영을 누리면서도 정신적으로는 공허하고 위선이 횡행하는 우려가 일고 있었다. 문학은 마땅히 그 시대의 반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소설이 오락 정도로 인식되던 시대에 디킨스(1812∼70)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를 쓰면서도 사실은 처참한 상황에 처한 하층계급의 애환을 묘사하였다. 새커리(1811∼63)는 상류층이나 중산층의 위선과 속물근성을 제재(題材)로 그들의 허영을 풍자하는 지적인 소설을 썼다. 또한 19세기에 접어들자 수많은 여류작가가 등장하는데, 제인 오스틴(1775∼1817)과 브론테 자매의 경우, 그 작품은 결코 남성 작가들에게 뒤지지 않았으며, 특히 조지 엘리엇(1819∼80)은 19세기 후반을 대표할 만한 지적인 작가로 평가된다.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테니슨(1809∼92)을 들 수 있으며, 낙천적인 가운데에도 고정화된 모랄을 초월하고자 난해한 시를 쓴 브라우닝(1812∼89)의 존재가 돋보일 뿐만 이니라 종교시인 홉킨스(1844∼89)의 정신세계는 현대에 깊숙이 연계되었다. 또한, 시인 A.아널드(1822∼88)는 비평가로서 오히려 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현세(現世)를 구가하는 영국인의 지적인 편협성을 비판하면서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질서의 관념을 도입하여 비평의 궁극목표는 교양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빅토리아의 시대사조는 아직도 완강하였지만, 문학의 세계에는 갖가지 반동이 나타나고 있었다. 세속에 반항하면서 퇴폐의 길을 택한 오스카 와일드(1854∼1900)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드디어 영국에도 세기말이 닥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영국에는 근대극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연극은 18세기 이래 희곡의 빈곤에 빠져 연극계는 흥행사와 배우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엽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예술극장 운동에 자극되어 상업극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을 주도한 것은 버나드 쇼(1856∼1950)였다. 아일랜드의 민족주의적인 연극운동(아일랜드 문예부흥)이 불길처럼 일기 시작한 것도 거의 비슷한 무렵이었다. 빅토리아 왕조시대에서 에드워드 왕조시대(1901∼10)에 걸쳐 토마스 하디(1840~1928), 헨리 제임스(1843∼1916), 콘래드(1857∼1924), 골즈워디(1867∼1933) 등의 소설가들이 활약하였는데, 시대는 이미 20세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참조항목

, , , , , , , , , , , , ,

카테고리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