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의 에스파냐연극

황금시대의 에스파냐연극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말의 1세기 반에 걸친 스페인 문학의 전성기를 황금시대라고 부르지만, 연극에서는 로페 데 베가의 등장으로 다수의 천재적인 극작가들이 차례로 배출되고, 엘리자베스시대(1558∼1603)의 영국과 비교될 만큼 성황을 이루었다.

물론 정신이 이 기운을 촉발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베가에 의해 창시된 스페인 연극은 오히려 고전극의 규범에서 벗어난 것으로, 비극과 희극의 구별은 무시되고 ‘3일치(一致)’의 규칙도 플롯의 일치밖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 코메디아의 가장 큰 특색은 극의 모티프를 극도로 결벽(潔癖)스러운 명예나 체면에 두고 있다는 점이지만, 로페 등에 의해 만들어진 코메디아의 종류는 매우 많다. 에스파냐의 역사 ·전통을 주제로 한 ‘국민사극’, 복잡한 플롯의 변화에 중점을 둔 연애희극 ‘의협(義俠)과 검술(劍術)극’, 광장에서 상연된 중세 종교극의 유물 ‘성찬신비극’ ‘파소’의 계통을 이은 ‘막간극’ 등은 특이한 형식을 띤 것이다.

16세기 말에는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발렌시아 · 등에 ‘코랠(corral)’이라고 하는 사설극장이 생겼다. 이것은 건물로 둘러싸인 공터 한 편에 무대를 만들고, 한 편에 벤치를 늘어놓고 일반 관객석으로 했으며, 주위 건물의 창문에서 귀족계급이 관람하였다.

무대장치도 고졸(古拙)하여 관객이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양쪽 건물의 차양에서 차양으로 커다란 천막을 늘이어 햇빛의 직사와 우천시에 대비하였다. 생애에 2,000편의 작품을 쓴 로페 데 베가에 필적할 만큼 두각을 나타낸 것은 돈 후안 전설을 최초로 문학화한 티르소 데 몰리나와 성격희극을 창시한 루이스 데 알라르콘이다. 로페 데 베가가 죽은 후 17세기 후반의 극단에 군림한 것은 칼데론 데 라 바르카였지만, 로하스 소리야, A.모레토 등도 뛰어난 재능의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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