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에스파냐문학

중세에서 르네상스까지 에스파냐문학

로마의 식민자(植民者)들이 이베리아반도에 유포시킨 통속 라틴어는 이윽고 카탈루냐어, 가르시아 포르투갈어, 카스티야어 등을 파생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 나라의 중심부에서 통용되던 카스티야어는 13∼14세기에 카스티야 왕국이 스페인의 패권(覇權)을 잡자, 그 공용어의 자리를 굳히면서 마침내 문학어(文學語)로도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카스티야어는 아랍인이 침입한 8세기 초엽에 이미 성립되었던 흔적이 있으나, 최초의 문학적인 기록은 12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즉 1140년경에 쓰인 작자 미상의 서사시 《시드의 노래》가 현재까지 알려진 최고(最古)의 문학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것은 에스파냐의 국토회복시대의 국민적 영웅인 엘 시드 캄페아도르의 무훈(武勳)을 노래한 스페인 문학 최초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또한 스페인 문학사에 처음으로 이름이 오르는 시인은 G.베르세오이다. 성직자였던 그는 《성모 마리아의 기적》 《성녀 오리아의 생애》)등 시편(詩篇)을 남겼는데, 그것은 서민적이고도 생동감 넘치는 풍부한 어법(語法)으로 소박하고 신선한 감동을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으로서 뚜렷한 개성을 처음으로 드러낸 것은 13세기 말엽에 태어나 14세기 중엽에 옥사(獄死)한 것으로 알려진 사제(司祭) J.루이스였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사랑의 글》은 운문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당시의 극도로 부패한 하층사회를 묘사함에 있어 기지와 해학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후세의 이른바 악한소설(惡漢小說:피카레스크)의 선구가 되었다.

극작은 15세기 J.엔시나의 목가극(牧歌劇)에서 비롯되지만, 연극을 교회와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민중의 것으로 만든 공로는 16세기의 극작가 L.루에다에게로 돌아간다. 그는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파소(paso)’라고 불리는 1막짜리 소극(笑劇)을 통하여 스페인 연극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1499년의 판본(版本)이 최고(最古)의 것으로 되어 있는 페르난도 데 로하스의 《셀레스티나》는 희곡형식으로 된 소설이지만, 젊은 남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뚜쟁이 노파를 비롯, 추악한 욕망에 눈이 어두운 하층사회의 인간상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근대문학의 개막을 알린 작품이다.

16세기의 스페인을 휩쓴 것은 《아마디스 데 가올라》를 대표작으로 하는 수많은 기사(騎士) 이야기(chivalry)와 그 뒤에 포르투갈에서 들어온 ‘목가(牧歌)소설’이었다. 이와 같이 공상적이고도 로맨틱한 소설들이 유행하자 이에 맞서 출현한 것이 최초의 ‘악한소설’인 《라사리요 데 토르메스의 생애》이다. 교활한 장님의 앞잡이, 인색한 수도자의 심부름꾼,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종사(從士)의 하인 등 밑바닥 인생을 걷는 라사로의 입을 빌려, 카를로스 5세 치하의 음울한 서민생활이 매우 간결한 필치로 시니컬하게 묘사된 소설이다. 이 작자 미상의 자전체(自傳體)로 된 작품이 이윽고 17세기의 에스파냐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국에까지 선풍을 일으킨 이른바 ‘악한소설’의 효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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