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어의 역사

양어의 역사

역사상으로 본 양어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다. 즉, BC 1800년경 이집트의 마에리스(Maeris) 왕은 못을 만들고 22종의 어류를 길렀다고 하며, 중국에서도 BC 500년경에 도주공(陶朱公)이 양어에 관한 책을 저술하여 잉어기르기를 장려했다고 한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어에 관한 저서이며, 이 때에 이미 양어로써 이익을 올렸다는 기록이 《오월춘추(吳越春秋)》에도 나와 있다. 또 역사상 그 번성함을 자랑하던 로마에서도 BC 100년경에 이미 양식장(養殖場)을 설치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13세기 중엽에 못에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뱀장어를 길렀다고 한다.

15~18세기에 이르러 프랑스를 필두로 하여 유럽 각처에서는 송어의 양식이 성행했으며, 송어의 (人工授精) ·(孵化)에도 성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양어의 발달을 보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부터이며, 프랑스에서는 1851년에 국립양어장을 설립하여 프랑스대학의 코스터 교수로 하여금 은어와 송어 ·굴 등을 양식하게 하였다.

미국에서는 1848년 W.다니엘이 앨라배마강(江)에 대서양 연안의 하천산(河川産)인 새드(전어의 일종)의 수정란(受精卵)을 이식한 것이 성공하여 3년 후에는 멕시코만(灣)에서 새드가 잡히게 되었다.

그 후 양어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아지고 여러 가지 자원보호에 대한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최근에는 새끼고기의 생산을 위한 국립과 주립 양어장의 수가 600개 가까이나 되고 생산 배부되는 새끼고기의 수도 10억 마리에 이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옛날, 풍류를 즐기던 상류계급이 정원에 못을 파고 고기를 기르던 것이 양어의 시초라 하겠다.

근대 양어의 시초는 1919년에 경남 밀양에 양어장을 설치한 것이며, 이어 26년에 경남 진해(鎭海)에 국립양어장을 설치하였고, 1942년에는 경기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淸平里)에 양어장을 설치하여 현재까지 담수양어(淡水養魚)의 연구 및 교도 기관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즉, 해마다 새끼잉어를 생산하여 농촌의 양어용 종묘(種苗)로서 이를 배부하고 있으며, 양어 강습회를 통한 기술자의 양성, 각종 담수양어에 대한 시험 및 생태 연구 등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에 비하여 한국의 담수양어는 아직도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양어에 대한 이론과 기술이 부족한 실정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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