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서예

고려시대의 서예

고려시대에 남아있는 서예의 자료는 흔적비문 ·명 ·사경 등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적다. 이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보면, 전기는 거의 이고 후기는 비 ·묘지명 ·진적과 사경 등이 많다. 전기는 전대를 이어 (楷書)는 구양 순의 서풍이고 (行書)는 풍의 일색이며, 후기에는 특히 제25대 이후 의 서체가 들어와 크게 유행하여 조선 전기까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환추(李桓樞)의 광조사진철대사비(廣照寺眞澈大師碑)와 보리사대경대사탑비(菩提寺大鏡大師碑塔:보물 361 )는 구법(歐法)인데, 근직(謹直)한 필력으로 주경하면서 금석기(金石氣)가 넘쳐 흐른다.

장단열(張端說)의 봉암사정진대사오탑비(鳳巖寺眞靜大師圓悟塔碑;보물 172)는 한국 서예사상 드물게 (虞世南)의 서풍으로서 수윤(秀潤) ·근정(謹整)한 명품이며, 고려 비 중에서는 최상급이다. (蔡忠順)의 현화사비(玄化寺碑)는 골기가 통달하고 정채(精采)가 비등하다고 하나 과찬한 것으로 여겨진다. 김거웅(金巨雄)의 거돈사승묘선사비(居頓寺勝妙禪師碑)와 민상제(閔賞濟)의 칠장사혜소국사비(七長寺慧炤國師碑)는 모두 구체로서 당당한 것들이다.

안민후(安民厚)의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국보 59)는 구법이나 우(虞)에 가까운 것으로 근엄 ·정정하며 품격 높은 일품으로 일류에 속한다. 이원부(李元符)의 반야사원경왕사비(般若寺元景王師碑)는 《금석고(金石攷)》에 “신라 ·고려 양조에 있어서 금석의 서체는 대부분 구법으로 일관한 경향이 있는데, 홀로 원부의 우법(虞法)이 있음은 실로 새벽하늘의 샛별에 비할 수 있는 진귀하고 중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장단열도 있었으며 또 완전한 우법도 아니며 나라 의 수금체(瘦金體)처럼 자획(字劃)을 가늘고 길게 뽑는 독특한 필법이다. 유려하고 운필이 자재(自在)하며 청경(淸勁)한 점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서명(書名)이 매우 뛰어난 석탄연(釋坦然)은 처음으로 안법의 해서를 썼고 왕법(王法)의 행서를 겸했으며 문수원중수기 액제(額題)와 승가사중수비(僧伽寺重修碑)를 썼는데 명실이 상부하다. 오언후(吳彦侯)의 영통사대각국사비(靈通寺大覺國師碑)는 구법으로 근엄 ·주경하고 단아하여 당당한 명품이다.

그 밖에 석영근(釋英僅)은 구법의 해서를 잘 썼고, 석혜소(釋慧素)도 안법을 섞은 듯한 해서를 잘 썼다. 김효인(金孝印) ·(金恂) 등은 구법이고, 전양고(錢良古)와 이군후(李君候)는 왕법의 행서를 잘 썼으며, 전원발(全元發)의 법주사혜정국사비(法住寺慧淨國師碑)는 전아한 해서이다. 제26대 (忠宣王)은 양위한 후 연경(燕京)에 가서 만권당(萬卷堂)을 짓고 당시 원(元)의 명사(名士)들과 교류하였으며 특히 조맹부와 친교가 두터워 그의 영향을 크게 받은 듯하다. 충선왕이 고려로 귀국할 때 문적과 서화를 많이 들여왔으므로 이에 따라 조맹부의 서체 즉, (松雪體)가 들어와 고려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그 이후 고려는 물론 조선 초기의 서를 풍미하였으며, 이 시기는 송설체 일색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 중에서 행촌(杏村) (李喦  )은 특히 송설체를 깊이 터득하여 행서와 에 뛰어난 대가였다. (權仲和)의 회암사나옹화상비(檜巖寺懶翁和尙碑)는 (隸書)인 것이 이채롭다. 한수(韓脩)는 《(東文選)》에서 양촌(楊村) (權近)이 “유항 한문경공(한수의 호)은 지행이 높고 견식이 밝아서 일시에 사람의 모범이 되었고 서범이 절륜하여 세상이 소중하게 여기더라”라고 하였다. 그의 회암사지공대사비(檜巖寺指空大師碑) ·신륵사나옹화상석종기(神勒寺懶翁和尙石鐘記) 등은 우법(虞法)으로 아윤 청경하고 품격이 높아 고려 비 중 최상급의 명품으로 손꼽힌다.

설장수(偰 長壽) ·설경수(偰  慶壽) 형제는 원(元)나라 사람으로 원 말에 고려에 귀화한 사람으로서 송설체를 썼다. 권주(權鑄)의 신륵사대장각장경비(神勒寺大藏閣藏經碑)는 아윤 ·청아한 것이다.

그리고 신라의 명필로 이름 높은 (金生)의 글씨를 석단목(釋端目)이 집자(集字)하여 세운 태자사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낭공대사비)가 있으며 이는 왕희지체의 행서이지만 서명 높은 왕희지의 서에 비하면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또 왕희지 글씨를 집자한 인각사보각국사탑비(鱗角寺普覺國師塔碑)와 직지사대장각전비(直指寺大藏閣殿碑)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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