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와 만주의 3 ·1운동

시베리아와 만주의 3 ·1운동

해외의 독립운동기지로 유명한 곳은 서간도(西間島)의 삼원보(三源堡)와 밀산부(密山府)의 한흥동(韓興洞)이었다. 이 곳을 중심으로 민족교육과 독립군의 간부양성을 위한 기관이 설치되었으며 1914년에는 이상설(李相卨)과 이동휘(李東輝)를 정 ·부통령(正副統領)으로 하는 대한광복군정부가 수립되었다.

이곳에서의 독립운동계획은 동삼성(東三省)에서 중광단(重光團)의 여준(呂準) ·이동녕(李東寧) 등이 국민국가 성립을 위해 1918년 12월(음력) <무오독립선언문(戊午獨立宣言文)>을 발표한 것이 최초의 일이었다. 이 무오독립선언문은 완전독립을 쟁취하려는 전쟁의 의사가 분명한 과격하고도 독립국가성립의 의지가 강렬한 내용이 담겨진 것이 특징이었다.

시베리아에서는 이동녕이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계획, 추진하였다. 특히 연해주(沿海州)의 대한국민의회에서는 윤해(尹海)와 고창일(高昌一)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였다. 1912년 2월 전노한족회(全露韓族會)가 대한국민의회로 개편 ·확장되면서 윤해와 고창일을 이곳 한교(韓僑)의 대표로 삼아, 파리뿐만 아니라 과 약소민족회의 등에도 파견함으로써 신한청년당과의 연합활동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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