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궁궐

백제의 궁궐

사비성

사비성

《삼국사기》에 백제 온조왕(BC 18~38)이 한성에 세웠던 신궁이 매우 검소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초기의 궁궐건축이 소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진사왕(385~392) 때에 궁전을 수리하고, 연못을 새로 파고, 그 속에 산을 만들고 기이한 금수(禽獸)와 초화를 길렀다는 기록에서는 궁궐건축의 화려함과 조경술을 짐작할 수 있다. 아신왕(392~405)이 한성의 별궁에서 탄생했다고 하여, 궁궐에 많은 건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개로왕(455 ~475) 때 고구려 승려 도림(道琳)이 건의하여 성을 쌓고 그 안에 궁실 ·누각 ·정자들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 국력을 소모하여 한성이 고구려에게 함락되었다. 웅진으로 천도하여 궁궐을 짓고, 동성왕(479~501)은 궁궐 동쪽에 임류각을 6장의 높이로 세웠다. 또한 연못을 파고, 기수(奇獸)를 기르고 초화를 심었다. 왕궁지로 생각되는 공산성내의 굴건식 건물 터와 연지(蓮池)터가 있다.

금강변 장방형의 계단식 연지는 취수와 연지를 겸한 다목적 연못으로 백제인의 창의력을 보여준다. 성왕(523~554) 때 사비로 이도(移都)하여 궁궐을 짓고, 벽해궁(碧海宮) ·황화궁(皇華宮) ·태자궁 등의 기록이 있다. 무왕(600~641) 때 궁남지(宮南池)를 축조하여 20여리에서 물을 끌어오고 방장선산(方丈仙山)섬을 만들어 화초를 심은 것들은 도교에 보이는 삼신사상(三神思想)의 표현이며, 신라 안압지 연못의 전형이 되었다. 최근 조사된 건물지 부소산성 아래에서는 연못 ·도로유적 ·건물터기단 ·석축시설이 발견되어 궁궐터로서의 가능성을 더해주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고구려의 안학궁이나 신라의 월성과 같이 화려한 궁궐의 존재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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