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백과사전

동양의 백과사전

중국은 유학(儒學)의 (經書)를 숭상하는 전통에 따라 이것이 관리의 등용제인 과거(科擧)에 출제되었기 때문에 고전의 발서(拔書)와 주석(注釋)을 모아 유형으로 나눈 유서(類書)가 중용(重用)되어 당(唐)나라 이래 역대 왕조에서 관찬(官撰)이 이루어지고, 민간에서도 특색 있는 유서가 출판되었다. 이러한 유서가 싹튼 것은 BC 2세기경에 이루어진 《(爾雅)》, 후한(後漢) 유희(劉熙)의 《석명(釋名)》, 수(隋)나라 두공담(杜公膽)의 《편주(編珠)》가 편찬되면서 비롯되어, 특히 수나라 우세남(虞世南)의 《북당서초(北堂書鈔)》 160권은 일서 일문(逸書逸文)의 보고(寶庫)라 일컬어졌다.

당나라의 대표적인 《예문유취(藝文類聚)》 100권은 624년 칙명(勅命)에 따라서 (歐陽詢)이 편찬한 것으로, 48부로 분류한 사항마다 사실의 초문(抄文)과 해석을 가하여, 그 형식의 제정성(齊整性)과 행문(行文)의 엄정성으로 하여 유서의 표본이라 일컬어졌다. 이 밖에 당나라 때에는 백낙천(白樂天)의 《백씨육첩(白氏六帖)》 30권, 서견(徐堅)의 《초학기(初學記)》 30권이 나왔다. 송(宋)나라 때에는 977년 칙명에 따라 대유서(大類書) 《태평어람(太平御覽)》 1,000권이 이방(李昉) 등에 의해서 관찬(官撰)되었다. 또, 이방 등은 도교(道敎)의 유서인 《태평광기(太平廣記)》 500권도 편찬하였는데, 여기에는 신선(神仙) ·요괴(妖怪) ·신단(神丹) ·방술(方術) ·속신류(俗信類)를 모으고, 귀중한 문헌을 수록하였다. 1005년에는 칙명에 따라 왕흠약(王欽若) 등이 《책부원구(冊府元龜)》의 편찬에 착수, 1013년 1,000권을 완간하였는데, 이 유서는 역대군신(歷代君臣)의 전기(傳記)를 엄선(嚴選)해서 평론한 것이다. 민간에서는 왕응린(王應麟)이 편찬한 《옥해(玉海)》 200권이 명저로 알려졌다. 명(明)나라는 1403년 칙명에 따라 일대 역사(役事)를 벌여 1408년 2만 2877권, 범례 60권에 이르는 《영락대전(永樂大典)》을 완간하였다.

해진(解縉)의 주관으로 이루어진 이 대전은 《홍무정운(洪武正韻)》의 전문(全文)을 수록한 것으로, 후세에 고일서(古逸書) 복원(復原)의 기초가 되었다. 민간의 것으로는 장황(章潢)의 《도서편(圖書編)》(127권, 1562)과 왕기(王圻)의 《삼재도회(三才圖會)》(80권, 1607)가 유명하다. 청(淸)나라 때에는 1701년 장영(張英) 등이 《연감류함(淵鑑類函)》 150권을 칙찬(勅撰)하였는데, 9년에 걸쳐 엄정한 편집과 압축된 내용으로 완성하였다. 22년 진몽뢰(陳夢雷) 등이 칙명에 따라 편찬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은 본문 1만 권, 목록 40권에 이르러, 그 규모에서는 《영락대전》을 능가하였는데, 오류가 많아 장정석(蔣廷錫)이 개정에 착수하여 28년에 완성하였다. 이 밖에 장정옥(張廷玉) 등은 옹정제(雍正帝)의 칙명에 따라 《사자영화(史子英華)》 160권을 1727년에 간행하였는데, 이를 문장의 표본이라 일컫는다.

타이완의 춘명출판사(春明出版社)는 소형 백과사전인 《신명사사전(新名詞辭典)》(1949)과 《세계지식사전(世界知識辭典)》을 간행하였다.

1915년 육이규(陸爾奎) 등이 편찬한 《사원(辭源)》 2권 및 31년에 나온 그 보편(補編)은 서양식 백과사전과 사전(辭典)을 겸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1890∼91년 일본 최초의 현대적 백과사전인 《일본사회사휘(日本社會事彙)》 2권이 출간된 이래 산세이도[三省堂] 등 여러 출판사에서 꾸준히 백과사전 편찬사업을 벌여왔다. 오늘날에는 헤이본사[平凡社]의 《세계대백과사전》(35권, 1972), 메루오다사의 《알파대세계백과사전》(25권, 72), 쇼가쿠칸[小學館]의 《니포니카(日本大百科全書)》(25권, 88) 및 《장르 자포니카》(21권, 80), 가쿠슈겐큐사[學習硏究社]의 《그랜드 현대백과사전》(32권, 80) 및 《밀리오네 전세계사전》(14권, 81), 고단샤[講談社]의 《대백과사전》(28권, 82) 등이 특색 있는 백과사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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