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오리 사지 소조불상군

원오리 사지 소조불상군

[ 元五里寺址塑造佛像群 ]

요약 평남 평원군에서 발굴된 고구려 시대의 소조불상군.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시대 6세기(고구려)
종류/분류 소조불상
크기 높이 19.5cm(불좌상), 17cm(보살상)

1937년 평안남도 평원군(平原郡) 덕산면德山面) 원오리(元五里) 절터에서 발굴된 시대의 소조불상군이다. 높이 19.5㎝의 여래좌상과 17㎝의 입상 두 종류가 출토되었는데, 여래입상 204점, 보살상 108점 등 모두 312점의 깨진 불상 조각들로 대부분 손상되어 완전한 형태는 보존되어 있지 않다. 각기 하나의 석회틀에서 조성하여 대량으로 구워 만든 소조상으로, 표면에 색칠을 한 흔적이 보인다.

누구나 도를 깨우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 천불사상(千佛思想)에서 나온 천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여래좌상은 결가부좌(結跏趺座)로 짧은 상체에 팔굽을 넓게 구부려 두 손을 배에 대고 깍지 낀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이 아닌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묶은 형태의 소발(素髮)로 표현되었고,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 반정도 뜬 눈, 미소를 머금은 입 등이 귀족 취향의 고귀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신체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어깨는 좁고 가슴은 밋밋하여 팽팽한 긴장감이나 강건한 기풍은 보이지 않지만, 선정인 자세에서 보이는 부드럽고 조용한 분위기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어깨에서 손목까지의 옷주름은 거의 없다시피해서 4세기의 불상들과 차이를 보이고, 불상이 앉은 좌대 둘레의 연판(蓮瓣)도 아무 장식이 없는 소판(素瓣)으로 가운데서 둘로 나누어지는 복판(複瓣) 형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이 불상의 좌대 연판 양식은 6세기 초 중국의 (北魏) 불상에서 보이고, 한국 (武寧王陵) 출토 왕비금관식(王妃金冠飾)에도 같은 양식이 보여 6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보살입상들은 좌우 대칭의 두터운 옷주름에 덮이고, 두 손으로 쥔 천의(天依)가 몸 앞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고 있다. 이러한 천의나 장식적 옷주름, 엄격하게 정면을 보는 자세 등도 북위의 양식 그대로이다. 모습은 타원형의 갸름한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감돌고 있어 조용하고 고상한 분위기가 적절히 나타나며, 부드러운 굴곡, 곡선적인 형태미 등에서 당대 귀족들의 기품을 엿볼수 있다.
다량으로 제작되고 출토지가 분명한 고구려 불상이라는 점 등에서 천불사상의 수용 과정과 당시 불교 신앙의 특성을 말해 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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