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혁명에서 소련붕괴까지의 러시아미술

10월혁명에서 소련붕괴까지의 러시아미술

20세기 초부터 1917년의 혁명을 거쳐 20년대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미술단체들이 등장한 가운데 서로 얽히고 설키는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모험과 파란에 찬 전위예술의 역사를 형성해 나갔다. 이와 같은 아방가르드 예술활동이 혁명 후에도 한동안 가능하였던 까닭은 초기의 볼셰비키혁명 정권이 이들의 활동을 방관하거나 호의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W.칸딘스키를 비롯, K.말레비치, M.샤갈, V.타틀린, N.가보 등의 모더니스트들에게 대학의 미술교수라든지 지방정부 미술장관 등의 공직이 부여되고 활동무대가 제공된 사실로도 입증된다. 그러나 얼마 뒤 샤갈은 프랑스로 망명하여 유럽에서 활로를 찾게 되고, 칸딘스키도 21년에 독일로 가서 바우하우스 설립에 참여했는가 하면 가보 역시 국내에서의 정치적 충돌로 설 땅을 잃고 베를린의 바우하우스에 합류하였다.

이렇듯 망명의 길을 택하여 서유럽 미술계에서 자유로운 활동을 전개한 전위파 미술가들과는 대조적으로 국내에 잔류한 일파는 결국 현실에서 유리된 관념주의라는 낙인이 찍혀 미술계에서 축출당하였다. 21년 소련정부의 통제경제정책이 실시되자 문학과 미술을 비롯한 모든 예술활동의 내용은 낱낱이 통제받기 시작하고 추상예술은 배척되어 미술의 현장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소련정권이 요구하는 미술이란 오로지 공산주의 이념에 입각한 사실주의적인 미술이어야 하고, 노동자와 농민을 교육하기 위한 미술인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생활의 진실’을 전달하는 미술로 귀일되었다.

이처럼 공산정권과 미술사조를 둘러싸고 격렬하게 벌어진 이념전쟁의 결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기치 아래 획일화되었다. 혁명이 일어난 뒤 몇 해 동안은 혁명기념일마다 기념행사를 위한 장식용 패널이라든지 플래카드, 선전용 포스터 따위를 만드는 것이 미술가들에게 주어진 모든 과업이었으며, 그 후 여기에서 새로운 응용미술의 분야가 개척되었다.

전위예술시대의 기수였던 구성주의자들은 대부분 타블로(tableau:벽화 등을 포함하지 않는 회화의 뜻)의 세계를 벗어나 설계나 디자인 등 응용미술의 분야로 활동무대를 옮겨갔다. 스탈린시대의 가혹한 사상통제의 반영으로서 점차 격심해진 형식주의 배격의 정치선전은 근대주의 내지 전위예술의 경로를 거쳐 어용적인 노선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던 소련 미술가들에게 있어 개성을 말살시키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이와 같은 소용들이 속에서도 28년에는 베네치아의 (비엔날레)에 그들의 작품이 참가하는 등 해외에 소련미술이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32년에는 소련미술의 다민족적(多民族的) 특성을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구호 아래 소련미술가동맹이 결성되고 건축 ·회화 ·조각 등 각 부문에 걸친 통제가 본격화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47년에는 ‘소비에트연방미술아카데미’가 창립되었지만, 그들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획일적인 미술 보급과 미술교육은 여전히 강화되었다. 53년 스탈린시대가 마침내 종말을 고하고 예술 각 분야에도 해빙분위기가 점차 감돌기 시작한 50년대 말~60년대 초에는 모이세엔코, 이루토넬, 사라호프 등 일군의 청년미술가들에 의해 스탈린기(期) 미술에 대한 타파운동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들이 등장한 이래 주제에 대한 교조적(敎條的)이고 교훈주의적인 해석은 후퇴하고 기법적으로도 갖가지 새로운 시도가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와 같은 활동이 뿌리 깊은 종전의 이념적 패턴에서 과연 탈피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소련미술이 어떤 변화를 치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타블로 형식의 예술에 관한 한 아직도 그 체질에 근본적인 변화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한편, 60년대와 70년대는 도시개발과 조형예술의 부문이 새로이 각광받은 시기였다. 모스크바 칼리닌가(街)의 조성, 지진을 겪은 후의 타슈겐트시(市)의 재건, 제르노그라드(모스크바의 위성도시) ·트리아치(볼가강 기슭) ·노보이(우즈베크) ·세프쳉코(카자흐) 등 신도시 건설에서 획기적인 구상과 웅대한 규모로 기술과 예술이 제휴하였다. 그것은 사회주의적 프로젝트의 특질과 관련하여 건축앙상블 중의 회화나 조각의 존재 양식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로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1993년에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개최된 ‘러시아 ·소련의 아방가르드, 1915-32’ 전시회는 러시아에서 근대예술의 성과가 나왔다는 사실과 문화에 의한 외화획득에 적극적인 러시아의 태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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