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미술

캄보디아의 미술

6~8세기경에 첸라라는 캄보디아인(크메르人)들이 부남왕국을 계승하였다. 캄보디아 미술은 인도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 1~2세기에는 가 스리랑카섬을 통해 전파되었고, 5세기 이후 와 힌두교가 들어왔다. 전(前)앙코르시대(Pre-Angkor:6~8세기)에는 시바교를 믿었으며, 사원은 우주의 중심이고 산은 신의 거처라고 여겼다. 이 시기는 사일렌드라왕조의 스리비자야 왕이 통치하던 시대로, 대승불교 및 통치자 숭배를 권하였다. 이 시기의 유물로는 인도 굽타 양식을 계승한 프논 다 양식(6~7세기)의 파라슈마상(像), 프라사드 안디드(7세기 후반~8세기)의 하리하라상 등이 있다.

앙코르 시대는 9세기부터 1177년까지 개화기를 이루었는데, 9세기 말 야쇼바르만 1세는 아쇼다라프라(톤레사프 호수의 북서지역)에 앙코르톰(Angkor Thom:大王城)을 세워, 대도성(大都城) 시대를 열었다. 앙코르의 첫번째 불교왕인 다라닌드라바르만 2세(1150~?)가 통치하던 시기나 직후로 추정되는 1177년경 힌두교 문화는 그 종말을 맞았다. 이후의 자야바르만 7세(1181~1220경)는 불교에 자극을 준 왕이었다. 12세기 초 수리아바르만 2세의 앙코르와트(Angkor Wat:王城寺)가 건축된 이 시기는 ‘캄보디아 양식’의 최절정을 이룬다.

앙코르와트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건축물로, 주로 힌두교적이기는 하나 불교적 주제도 보여준다. 방형기단(方形基壇) 위에 5개의 고탑(高塔)을 세우고, 3중(三重)으로 된 회랑의 중앙부는 높게 하였다. 제3회랑 중간에 십자형의 열주랑(列柱廊)이 있고, 중심에는 사당의 탑을 세웠다. 회랑 내벽에는 큰 화면구성으로 된 힌두교 신화도가 부조되어 있다. 캄보디아인들은 건축과 공예에서 힌두교 ·불교 양식의 2가지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켜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미술을 창조하였다.

앙코르와트와 유사한 양식을 보이는 바이욘(1200년 말~13세기 초경으로 추정)은 사원이 우주의 중심이며 신의 거처로서의 ‘세상의 산’을 표현하는 시바교의 영향으로 산의 형태를 나타낸 사원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로케슈바라 보살(세상의 왕)은 불교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원래는 사암(砂岩)에 회칠을 한 뒤에 채색한 것으로 그 높이가 1.7 m에서 2.4 m에 이른다. 바이욘은 43 m 높이의 중앙 고탑을 중심으로 54개의 탑으로 되어 있다. 각각의 탑에는 로케슈바라(세계의 신)의 커다란 안면상(顔面像)이 4면에 부조되어 4방향을 향하고 있다. 이 안면상은 지성(至聖)의 왕(데바라자)을 상징하며 동시에 자야바르만 7세의 초상을 이상화시킨 것으로, 이 왕이 로케슈바라의 화신임을 보여 준다. 캄보디아 양식에서는 숭배대상으로서의 조상(彫像)이 흔하며, 그 예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표현되는 공주의 조상이 있다. 바이욘회랑은 프리즈 조각으로 되어 있으며, 특히 장식미에 넘치는 힌두교의 조그만 사원(寺院)인 ‘반테아이 스레이’의 박공 프라코 등과 그 조각은 앙코르기의 조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바이욘은 순수한 불교양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굽타 양식과 벤기파(派)의 대승불교양식을 수용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야바르만 7세의 죽음으로 힌두교화된 대승불교와 연관된 통치자 숭배사상 및 사회구조가 몰락하자, 캄보디아인들은 소승불교(테라바다)로 개종하였다. 이 소승불교는 생활 속에 침윤되어 이 시기에는 드바라바티의 소승불교적 양식을 갖춘 불상이 제작되었으며, 캄보디아의 웅장한 조각이 계승되기도 하는 대승불교에서 소승불교로 변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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