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신화와 상징

대나무의 신화와 상징

《》에 이서국(伊西國)이 금성에 침입하였을 때 신라군이 당해내지 못했는 데 이때 귀에 댓잎을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서 신라군을 도와주었다. 적이 물러간 후 그들이 간 곳을 몰랐는데 미추왕릉 앞에 댓잎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미추왕릉을 죽현릉(竹現陵)이라고 하였다. 고대 소도(蘇塗)의 어원적 변형으로 보는 솟대와 별신대는 신간(神竿)으로서 흔히 대로 만드는데, 신과의 교감(交感)을 바라는 심리적 반영의 한 형태이다.

무속신화에서 담금애기의 아들 3형제가 대나무 밑에서 아버지를 찾다가 대나무들이 아버지를 대신해 주겠다고 한 데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상주들이 대지팡이를 짚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풍습에 새벽에 문 밖에서 대를 태워 그 소리로 잡귀를 쫓는 것은 중국의 폭죽 풍습과 맥을 같이 한다. 대는 번식력이 강하고 상록인 점에서 소나무와 비견되는 영생과 불변을 상징한다. 대는 신을 부르거나 내리게 하는 신대로 사용되는 점에서 신화적 상징성을 유추하게 된다. 즉 대는 신령의 집, 신령의 통로 등을 상징한다.

《삼국유사》에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피리를 통해 남녀음양의 이치를 상징하면서 안식과 평화를 상징하였으며 이것은 통일신라시대를 지탱한 국민적 합심과 평화를 상징한 것이다. 대는 사군자(四君子)의 하나로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대쪽같은 사람’으로 불의나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군자의 행실에 비유된다.

《》에서도 대를 두고 “훌륭한 저 군자여…”라고 하였다. 유교적 가치관에 젖은 선비들은 대를 그들의 척도로 삼았다. 가 피살된 다리를 선죽교(善竹橋)라 명명하고 민영환이 자결한 곳에 혈죽(血竹)이 돋았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뜻을 부여한 것이다. 에서는 대를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을 도우며 자비의 마음을 돕는다고 하였으며 댓가지는 관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선가(禪家)에서는 수행자를 지도할 때의 도구로서 죽비(竹篦)를 사용하는데 수행의 증진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순(舜)임금이 창오(蒼梧)에서 죽었을 때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이 소상강 가에서 슬피 울다 눈물이 강가의 대에 뿌려져 물들었다고 한다. 이것이 소상반죽(瀟湘斑竹)인데 남편을 따라 죽은 그들의 절개를 상징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갈라지되 타협하지 않는 스스로의 민족성을 대에 비긴다. 송죽매(松竹梅)를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신년경축에 사용하며 모든 경사에 상징으로서 표시한다.

참조항목

, ,

카테고리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