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학의 연구사

국어학의 연구사

국어 연구의 역사는 엄격히 말하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6세기에 완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이두의 표기법에서 단어의 개념을 표시하는 의미부(意味部:sémantème)는 훈(訓)을 이용한 한자, 문법적 기능을 표시하는 형태부(形態部:morphème)는 음을 이용한 한자가 사용되고 있어서 당시 학자들의 문법체계의 인식 정도를 엿보게 한다. 이 표기는 전혀 무질서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 의한 이론적인 저술과 후인(後人)의 계승 발전이 없었으므로 국어학 연구개척의 공로는 훈민정음 창제에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세종이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등 우수한 신하의 도움으로 1443년(세종 25) 완성한 훈민정음은 국어 표기를 위하여서도 완전한 문자이지만 그 제자(制字) 원리의 독창성과 당시의 음운체계의 파악과 설명도 현대 음운학 수준에 이른다. 그 밖에도 당시의 한자음과 중국 한자음에 대한 연구도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한 수준의 연구가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진전이 없이 중종 때의 최세진(崔世珍), 실학시대(實學時代)의 신경준(申景濬) ·황윤석(黃胤錫) ·유희(柳僖) 등에 의하여 조선 말기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1894년 (甲午改革)으로 일어난 언어와 문자의 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려는 운동으로 현대 국어학의 싹이 트게 되었다. 이 때 유길준(兪吉濬) ·지석영(池錫永) ·주시경(周時經) 등은 개화(開化)에 대한 열띤 정열로써 상당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이것도 정서법(正書法)의 수립이란 목적이 너무 뚜렷하였으므로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1930년대 정규적인 학문을 수련한 학자의 출현으로 국어의 과학적인 연구를 행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처음으로 현대적인 국어학이 성립되었다. 8 ·15광복 이후에는 대학의 확충과 학회의 활발한 활동, 서구의 발달된 언어학 이론의 도입으로 양과 질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된 국어학을 이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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