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공시론과 통시론

국어의 공시론과 통시론

언어도 시대와 함께 변천한다. 그리고 체계적으로 달라진다. 15세기의 국어의 은 7개였는데 500년 뒤인 오늘날의 모음은 9개로 변하였다. 단어가 때에 따라 변하고 문법체계도 변한다. 그뿐 아니라, 말은 지역에 따라 달라지고 또 같은 때 같은 곳에서 쓰이는 말도 똑같은 것이 아니다. 직업과 계급 등 사회집단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진다. 이와 같이 때와 곳과 사회집단에 따라 정해진 하나의 언어체계를, 때에 따르는 변화와 곳이나 사회집단에 따르는 다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그 하나의 언어체계에만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는 의 한 부문을 정태언어학(靜態言語學:linguistique statique) 또는 공시언어학(linguistique synchronique)이라 한다. 한 언어 체계 안에서는 모든 요소들이 서로 긴밀히 얽히어 있는데, 이 현상을 공시태(共時態:synchronie)라고 한다.

즉 공시언어학은 이 공시태를 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의 한 부문이다. 이 공시언어학의 연구는 어느 나라의 언어, 어느 지방의 말, 또는 어느 때의 말이라도 때와 곳과 사회집단을 인정하게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공시언어학의 연구대상은 무수하게 많은 것이 된다. 국어만 하더라도 경기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지금 쓰고 있는 말, 15세기 서울의 상류계급의 말, 18세기 경북의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고 있던 말 등이 각각 그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때에 따라 변화하는 말의 모습을 연구하는 방법을 진화언어학(進化言語學:linguistique évolutive) 또는 통시언어학(linguistique diachronique)이라 한다. 말의 변화해 가는 모습을 통시태(通時態:diachronie)라 하는데, 통시언어학은 이 통시태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언어학의 한 부문이다.

언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으나 사람들은 그 변화의 폭이 좁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작은 폭이 자꾸 겹쳐지면 어느 때엔가는 그 변화의 모습이 두드러지게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이 언어가 변화하는 시기이다. 한 변화의 시기에서 다음 변화의 시기 사이에 사소한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정도의 변화는 거의 무시해도 무방하다. 그러므로 공시언어학이 다루는 시간의 폭은 꽤 넓을 수도 있으며 또 모든 언어 요소들의 변화는 함께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폭은 가려 잡는 문제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와는 달리 통시언어학은 여러 변화의 시기에 있어서의 앞뒤에 이어지는 변화의 모습을 연구한다. 언어에 대한 이 두 연구에 있어서는 그 각 관점이 서로 구별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한 언어 사실에 대한 설명방법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 법칙은 서로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두 연구부문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매우 긴밀히 서로 의지하는 관계에 있다. 즉, 공시언어학에 붙는 언어 사실로서 그러한 사실의 유래나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는 통시언어학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공시태가 통시태에 의해서 설명되는 일이 많다. 가령 현대국어의 합성어(合成語)를 만들 때에 두 말 사이에 ㅂ이 첨가되거나 평음(平音)이 (激音)으로 바뀌는 일이 있는데, "조+쌀→좁쌀, 이+때 → 입때 또는 수+개 → 수캐, 살+고기 → 살코기, 안+밖 → 안팎"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공시태의 범위 안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으나 통시태에 대한 연구는 이것이 그렇게 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곧, ㅂ이 첨가된 것은 그 둘째 말인 '쌀·때' 따위가 옛말에서는 ㅂ첫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국어의 공시론과 통시론 본문 이미지 1, 국어의 공시론과 통시론 본문 이미지 2) 그것이 합성어의 경우에는 일종의 화석(化石)처럼 남아 있는 것이며, 또 격음으로 바뀐 것은 그 앞의 말이 ㅎ으로 끝나 있었기 때문에(숳, 국어의 공시론과 통시론 본문 이미지 3, 않) 이것이 다음 말의 첫 평음을 격음으로 바꾼 것이다. 이와 같이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가지면서도 또한 혼동해서는 안 되는 각기 독자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독자성에는 약간의 다름이 있다.

즉 공시언어학은 통시언어학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지금 쓰이고 있는 모든 언어들은 그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도 능히 연구될 수 있으며, 어떤 언어든지 그 어느 시기를 그어서 그 상태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다. 특히, 옛 언어자료를 가지지 않은 언어들은 공시언어학의 대상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와는 달리 통시언어학은 공시언어학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는 없다. 여러 시기의 언어상태가 연구되지 않고서는 통시적 연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에 대한 공시론적 연구와 통시론적 연구의 균등한 발전이 요청되는 것이다. 한편, 공시언어학은 한 시기의 언어구조와 체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한다고 하여 기술언어학(記述言語學:descriptive linguistics) 또는 구조를 다룬다고 하여 (構造言語學:structural linguistics)이라고 하고, 통시언어학은 언어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라 하여 사적언어학(史的言語學:historical linguistics)이라 한다.

구조언어학적 방법은 언어의 사적(史的)인 연구에도 적용되므로 기술언어학과 구별하는 견해도 있으나 대체로 같은 언어학으로 다루어진다. 그러나 언어현상을 겉으로 드러난, 있는 그대로를 평면적으로 고찰하는 기술언어학적 방법에 결함이 생겼다. 말은 밖으로 드러난 물질적인 면이 있는 반면, 안에 숨어 있는 심리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물질적인 면은 매우 어수선하여 걷잡기 힘들게 되어 있다. 이것이 연구의 주대상(主對象)이 되어 있는 기술언어학에 결함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성에 있어서도 그렇고 형태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통어론적(統語論的) 부문에 있어서도 그렇다.

그리하여 걷잡을 수 없는 음성을 머리 속에 기억되어 있는 추상적인 음성으로 파악하여 음운으로 하고, 또 같은 뜻을 가진 여러 형태를 뭉뚱그려 추상적 존재인 (形態素:morphème)를 파악하고, 또 통어론(統語論)도 음운학(音韻學)이나 형태론과 마찬가지로 밖으로 나타난 말의 선조(線條)에 초점을 둔 방법을 지양하고, 유한의 세계로 인도하여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구조, 곧 추상적인 세계를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추상적인 세계란, 통어론에서는 속에 숨어 있는 뜻의 세계이다.

통어론에서 겉으로 드러난 무한한 세계를 유한한 요소로 분석하여 그 간결한 구조를 분석하고 이 구조가 어떻게 무한하게 부려 쓰여져서 겉으로 드러난 복잡한 구조로 실현되는지를 모색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서 (기술언어학)의 연구방법이 가진 결함을 극복한 연구방법이 N.촘스키의 (變形生成文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이다. 이 문법은 어떠한 특정한 문장(음성이나 형태소)도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그러나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까지도 포함한 한 언어의 모든 것을 생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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