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의 역사

관광의 역사

관광의 근원은 유목시대 이래의 새로운 목초지로의 이동, 물물의 교환, 이민족간의 침입 등 인간의 이동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 신전순례 형태의 관광이 존재하였으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올림픽 경기 참가, 온천지 요양, 신전참배 등에서 오늘날의 체육 ·요양 ·종교 목적 관광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이미 여행하는 사람을 ‘신성한 사람’으로 후대하던 습관이 있었고 이같은 환대관습은 호스피탈리타스(Hospitalitas)라 하여 최고의 미덕의 하나로 여기는 등 관광의 싹이 텄다.

그러나 5세기에 이르러 로마제국이 붕괴되면서 치안문란, 도로황폐, 화폐경제에서 실물경제로의 역행 등 악조건이 겹쳐 중세 십자군전쟁 때까지 관광의 공백시대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십자군전쟁 이후 동서 문물교류에 따른 이문화(異文化)에의 호기심의 증대와 예루살렘을 비롯한 성지순례에 대한 열망의 산물로 중세의 관광은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여행의 형태는 대부분이 수도원에서 숙박하고 승원기사단의 보호를 받으면서 가족 단위의 종교관광이 성행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15세기 이후의 지리상의 발견, 문예부흥기 ·산업혁명기를 거치는 사이에 중세 종교관광 위주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의미의 관광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 때 J.머리(1778∼1843)의 《여행편람》과 K.배드커(1801∼1859)의 《안내기》 등과 같은 여행안내책자가 등장하였고, 근대 관광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여행사무 대행업자 T.쿡 목사는 처음으로 여행알선업체를 창설하여 단체 유람객을 모집하였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는 기선의 발명으로 세계의 관광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종래의 수용적인 면만 고려했던 수동적 입장에서 관광산업은 무형의 수출(invisible trade)이라는 능동적인 개념을 도입하면서부터 더욱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세계 각국이 대전으로 인해 피폐된 자국의 경제부흥을 위한 방편의 하나로 관광사업의 효용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항공기의 발달 등 대량수송 조건이 갖추어진 데다가 각국의 경제력도 회복되어 국민의 가처분소득 증대와 여가가 늘어났고, 매스 커뮤니케이션도 발달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미지의 세계를 가르쳐 주었다. 도시화 ·기계화로 인한 인간상실, 공해 ·소음의 심화는 인간의 도피욕구를 자극시키는 등 대중관광시대를 초래하게 하였으며 앞으로는 관광의 국민후생적 효과로 인한 사회관광의 발달로 세계관광은 더욱 질적인 발전과 양적인 확대를 거듭할 것이다.

한국의 관광역사는 신라 화랑도의 명소 순회여행, 시인(詩人) ·묵객(墨客)의 풍류여행, 불교신도의 봉축행사 참가, 각 지방의 민속행사 참가, 천렵 ·뱃놀이 등에서 그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구한말 문호개방에 이은 일제강점기에 철도의 개통에 따른 철도경영의 일환으로 1912년 부산 ·신의주 등지에 서구식 숙박시설의 효시인 철도호텔을 개관하는 등 관광사업이 태동되었으나 이는 진정한 의미의 관광이라고는 할 수 없다. 8 ·15 광복 이후 건국 초기의 구미 각국과의 외교관계 수립과 함께 외래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대비한 숙박시설의 건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한국 관광은 6 ·25 전쟁으로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 갔으나, 6 ·25 전쟁 후의 전후 복구기를 거치면서 1953년 유급휴가제를 실시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이 제정되었고, 1954년 2월 교통부 육운국에 관광과가 신설되었다.

1957년 교통부가 국제관설관광기구(IUOTO)의 정회원 가입, 1958년 태평양 ·아시아관광협회(PATA)에 준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61년 관광사업진흥법이 제정 ·공포됨으로써 한국관광의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또한 1962년 국제관광공사법이 제정되어 국제관광공사(현 한국관광공사)가 설립되었다. 1964년 교통부 육운국 관광과가 관광국으로 독립되어 독자적인 관광행정을 수행하게 되었으며, 1965년 관광분야 국제회의인 PATA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는 등 1960년대는 한국 관광산업의 기반조성과 국제관광객 유치를 위한 체제정비기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립공원과 도립공원 지정이 되었으며 아시아관광협회(ASTA) ·동남아시아관광협회(EATA) 등의 국제적 관광기구에 가입, 국제협력의 기반을 구축하고, 경부고속도로의 개통(1971) ·보문단지의 조성(1979) 등으로 관광의 광역화를 꾀하였으며, 관광진흥기금의 설치(1972), 관광기본법(1975)의 제정 등을 통해 관광진흥과 관광지개발에 진력, 1978년에는 외래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는 획기적인 기록을 남겼다.

1980년대는 한국 관광문화의 틀을 잡는 데 큰 기여를 한 시기로 볼 수 있다. 1983년에는 ‘관광목적 50세 이상의 해외여행’을 자유화한 데 이어 1985년에는 국제부흥개발은행 ·국제통화기금 세계총회를 개최하였다. 1986년에는 관광진흥법을 전면 개편하고, 아시아경기대회(1986) ·서울올림픽대회(1988) 등을 개최함으로써 국민관광객은 1억 6000여 명을 기록하고, 외래관광객은 180여 만 명을 넘어섰다. 1980년대는 관광기회의 평준화 ·대중화 ·대량화를 이룩한 시기였다. 1990년대에 들어와 정부는 1980년대의 여세를 몰아, 108개 국이 참가한 ‘대전엑스포’(1993)를 열고, 이어 1994년은 ‘서울정도(定都)600년’을 맞아 ‘한국방문의 해’를 설정, 외래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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