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면

한국가면

요약 얼굴을 가리거나 변장하기 위하여 나무, 종이, 흙 등으로 만든 동물 또는 사람 얼굴 모양의 형상이다.

신성가면이나 서낭신제의 가면은 나무를 깎고 다듬어서 조각하고 채색한 것, 구나가면은 주로 가죽·종이·대[竹]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서 헝겊·나무·짐승털·쇠붙이 등으로 가공하고 채색한 것, 무용가면은 주로 종이를 가지고 만든 것으로서 털·쇠붙이로 가공·채색한 것이다. 그리고 연극가면은 주로 바가지·종이·나무·가죽으로 만든 것이며, 이는 여러 물질을 가공·채색한 것이다.

한국가면의 대부분은 움직이지 않는 조형(造形)에 지나지 않으나, 그 중 어떤 것은 움직이는 부분을 가진 것도 있다. 구나(驅儺)의 방상시가면의 눈알과 봉산(鳳山)의 사자 가면의 입, 그리고 산대가면극의 눈끔적이 가면의 양쪽 눈, 마산(馬山) 오광대가면극의 턱까불가면의 턱을 비롯하여 동래야유(東萊野遊)의 양반가면의 턱, 수영야유(水營野遊)의 수양반가면(首兩班假面)의 턱, 하회별신(河回別神) 굿탈놀이의 선비·양반·중·백정 가면의 턱, 그리고 해서가면극(海西假面劇)의 황주(黃州) 양반가면의 턱 등이 그것이다.

기원과 전개
한국에 언제부터 가면이 존재하였고, 가면놀음[假面戱]이 시작되었는지를 각각 현전(現傳)하는 유물(遺物)과 여러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물로서는 6세기경 신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에 옻칠을 한 가면이 있다. 이는 1946년 경주(慶州) 노서리(路西里) 호우총(壺塚)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며, 지금까지 발굴된 한국 유일·최고(最古)의 유물 가면이 된다. 이 가면의 구조를 보면, 눈알은 유리로 되어 있고, 눈은 황금의 환(環)으로 돌려 있으며, 두 눈[二目]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방상시가면(方相氏假面)으로 짐작되는데, 대개 황금사목(黃金四目), 곧 네 눈을 지닌 것을 연상하기 쉬우나, 사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서 두 눈짜리도 있으니, 《태평광기(太平廣記)》 <견이록(甄異錄)>에 두 눈의 방상시가면이 있다는 기록이 나타나고, 또 《순자(筍子)》 <비상편(非相篇)>에도 두 눈으로 되어 있다고 씌어 있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록들로 미루어 보더라도 신라의 유물 가면이 곧 방상시가면임은 거의 틀림없을 듯하다. 신라 때 제작된 가면은 당시 왕후(王侯)·귀족들의 상례(喪禮) 때에 사용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한국의 문헌상으로 나타나는 최고(最古)의  가면놀음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 수록되어 전하는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시(鄕樂雜詠詩)》 5수(首) 중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猊)>의 4가지이다. 이는 9세기 말엽 통일 신라 때의 일로서 가면과 가면놀음에 대한 한국 최초의 기록이 되는 셈이다. 그 밖에도 신라 때에는 가면놀음으로서 ‘검무(劍舞)’와 ‘처용무(處容舞)’가 행하여졌다고 한다.

이에 대한 정확한 문헌과 유물은 없지만, 17세기 조선 현종(顯宗) 때 경주부사(慶州府使) 민주면(閔周冕)이 《구동경지(舊東京志)》를 증보·간행한 《동경잡기(東京雜記)》 권5 <풍속조(風俗條)>를 보면 ‘검무’는 가면놀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검무는 중국 북제(北齊) 난릉왕(蘭陵王)의 고사(故事)를 놀이화한 ‘대면희(代面戱)’와 마찬가지로 어린 관창(官昌)의 무훈담(武勳譚)을 춤으로 연희화(演戱化)한 것이다. 그리고 ‘처용무’는 고려·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가면을 쓰고 춤추는 것으로 《고려사(高麗史)》 <고종조(高宗條)>를 보면, 1236년(고종 23) 복야(僕射) 송경인(宋景仁)이 취흥하여 처용무를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처용무’에 관한 연희의 가장 오랜 기록이다. 또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나례(儺禮) 행사 때 방상시가면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이 ‘나례’의 신앙가면(信仰假面)에서 뒷날 예능가면(藝能假面)으로 진전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산대잡희(山臺雜戱)에서 파생된 산대가면극(山臺假面劇)을 비롯하여 최근까지 민간에 연중행사의 하나로서 각 지방에서 연희되던 해서가면극(海西假面劇)·야유(野遊)·오광대가면극(五廣大假面劇)·서낭신제가면극[城隍神祭假面劇]에 사용된 가면(假面)이 있다.

종류
한국 가면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신앙가면(信仰假面)이고, 다른 하나는 예능가면(藝能假面)이다. 신앙가면이란 가면을 어떤 일정한 장소에 안치(安置)해 두고 그 가면에 고사(告祀)를 지내거나, 또는 가면을 얼굴에 쓰고 악귀(惡鬼)를 몰아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능가면이란 가면을 얼굴에 쓰고 무용할 때나 연극할 때 사용하는 것을 말하며, 이 예능가면에도 신앙적인 일면을 얼마간 지니고 있다.

먼저, 신앙가면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일정한 장소에 안치해 두고 고사만을 지내는 신성가면(神聖假面), 악귀를 쫓아내기 위해서 얼굴에 쓰는 구나가면(驅儺假面)이 있으며, 신성가면에는 광대시가면·창귀시가면·소미시가면·놋도리가면·장군가면이, 구나가면에는 방상시가면과 사자가면이 있다.

또 예능가면에도 춤을 출 때 얼굴에 쓰는 무용가면, 연극할 때 얼굴에 쓰는 연극가면이 있다. 무용가면에는 처용무가면이, 연극가면에는 산대가면극의 가면, 해서가면극의 가면, 야유·오광대가면극의 가면, 서낭신제가면극의 가면 등이 있다.

특질
그리스·중국·일본 등 여러 나라의 예능가면에서 그 나라 사람의 골격과 모습을 볼 수 있듯이 한국 가면은 한국적인 표정을 지니고 있다. 즉, 인상가면(人相假面)은 모두가 한국사람의 골격과 용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역(役)에 따른 인물의 개성도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하회별신굿탈놀이의 선비·양반·각시·중·백정 가면 등이 그러하며, 그 가면들은 매우 사실적이며 조각수법은 한국의 나무 가면 중 일품(逸品)이다.

그러나 한국 가면은 대부분 그 형모(形貌)가 그로테스크하고, 또 색채가 아주 짙은 데에 특질이 있다. 이것은 사용상에 있어서 야간에 장작불의 조명하에 연출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강렬한 색채로 하지 않으면 표현의 힘을 약하게 할 염려가 있고, 또 그 형모가 그로테스크한 것도 다분히 이와 같은 이유에 기인하는 것이다. 반대로 가면극에 사용하지 않는 개성 덕물산의 신앙가면과 정식으로 야간에 연희(演戱)하지 않는 강릉 및 하회의 신앙가면은 색채가 그렇게 강렬하지 않음을 보아도 그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가면들의 용모가 험상스러움과 동시에 표정이 매우 딱딱한 것도 특색의 하나이다. 채색상으로 보면, 주홍색(朱紅色)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흑남색(黑藍色)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금색·은색도 적잖이 사용하였다. 한국 가면 중 하회의 나무 가면 중에는 얼굴과 턱을 따로따로 만든 것이 있다. 이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얼굴의 표정이 매우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을 바꾸는 데도 대단히 유리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색채라든지 형모 외에 사용상의 필요에서 거의 모든 가면에는 탈보인 헝겊조각 및 노끈을 가면의 뒤에 붙여놓았는데, 이것이 있기 때문에 연기자는 가면을 자기의 머리에 밀착시켜서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하고, 자신의 후두부를 관람자에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 가면은 대부분 사람의 얼굴을 나타낸 것이나, 그 중에는 여러 신(神)들의 형상을 나타낸 것도 있다.

방상시가면, 처용가면, 오광대가면극의 오방신장가면(五方神將假面), 산대가면극의 연잎가면[蓮葉假面]과 눈끔적이 가면이 그것이다. 그 밖에 영노와 같은 가상(假想)의 동물가면도 있다. 또 연극의 줄거리가 희극(喜劇)인 관계로 동물가면도 상당히 있다. 즉, 산대 및 해서 가면극의 원숭이가면, 오광대가면극의 사자·범·담비가면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양반가면에서 대부분의 용모는 쌍언청이·언청이·입비뚤이·코비뚤이·사팔뜨기 등 불구자 모습이 특징이다. 이는 조선시대에서 양반 계급에 대한 평민(平民)들의 반감이 가면에 반영된 것이다. 한국 가면은 형모가 그로테스크하고, 색채가 짙은 데에 특질이 있지만, 그 표정에 사실적인 것은 적고, 대부분이 상징적이라는 점도 또한 그 특색의 하나이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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